강의실에서 이 과제를 발표했을 때, 으레 터져 나올 것이라 예상했던 학생들의 충격이나 불만 섞인 탄식은 없었다. 오히려 학생들은 놀라울 정도로 태연했다. 내가 돕겠다고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질문조차 없었다. 그 침묵의 의미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감일이 되자 인공지능(AI)이 생성한 텍스트 특유의 굵은 글씨체까지 그대로 포함된, 겉보기에만 번지르르한 보고서들이 줄지어 제출되었기 때문이다. 이어진 구술면접에서 진실은 금세 드러났다.
편리함 뒤에 숨겨진 ‘뇌의 퇴화’ 경고
AI는 환상적인 도구다. 하지만 우리는 이 도구를 무엇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 “이게 무슨 문제인가? AI 도구는 우리 일을 편하게 해주라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물론 AI를 단순한 목발이 아닌 도구로 활용한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사고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모두 외주화해 버린다면, 우리 뇌는 걷는 법을 잊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대학 전문 상담가인 우마(Uma) 씨는 “우리 뇌는 충분한 도전을 주지 않으면 활성화되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쉽게 게으른 모드로 전환되어 그 상태에 머물러 버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뇌를 쓰지 않고 AI에 의존할수록 인지 능력의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경고다.
플로리다 애틀랜틱 대학(FAU)의 실험: 교육의 판을 바꾸다
이러한 우려 속에서 대학 교육 현장, 특히 컴퓨터 공학 분야는 2023년 생성형 챗봇 ‘챗GPT’의 등장 이후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다. 플로리다 애틀랜틱 대학교(FAU)의 교수진은 AI가 교육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음을 인정하고, 이에 맞춰 커리큘럼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있다.
FAU 컴퓨터공학과의 사레 타에비 교수는 더 이상 기본적인 이론 교육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그는 “3년 전만 해도 학생들이 며칠을 고민해야 했던 과제들이 이제는 AI를 통해 순식간에 해결된다”며 “우리는 강의 방식, 과제 부여 방식, 다루는 주제, 기대치, 심지어 시험 방식까지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내놓은 결과물 위에 인간의 창의성을 더해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과제를 재설계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 기술자가 아닌 ‘AI 그 이상’의 인재 양성
인디애나주 로즈-헐만 공과대학의 전기 및 컴퓨터 공학 교수인 칼로타 베리 역시 업계의 변화를 지적한다. 베리 교수는 “단순히 프로그래밍만 할 줄 아는 학위는 앞으로 문제가 될 것”이라며 “AI가 잘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자신의 기술을 고도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는 학생과 교수진 모두가 동의하는 부분으로, 미래 경력을 위해 컴퓨터 공학 교육이 단순 기술 습득을 넘어설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타에비 교수는 AI 사용을 장려하면서도, 배운 기술과 AI를 어떻게 결합할지에 대한 인식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는 학생들이 졸업 후에도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기 위함이다.
무조건적 금지보다는 ‘윤리적 활용’에 방점
일부 교수진은 AI를 교육 과정에 적극적으로 도입하되, ‘언제,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윤리적 기준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FAU 전기공학 및 컴퓨터공학부의 모하마드 일리아스 교수는 “학생들에게 이러한 도구를 무조건 금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중요한 것은 도구를 사용하는지 여부가 아니라,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발맞춰 FAU는 AI 리터러시(문해력) 자원을 통해 대학 커뮤니티 내에서의 AI 사용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골든 마두메 공과대학 경력 센터 담당자는 “대학은 AI 리터러시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변화에 적응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FAU는 2024년 3월 학부 프로그램 위원회 회의를 통해 사이버 보안을 위한 AI 과정 및 수료증 과정을 신설하는 등 학위 프로그램을 개편했으며, 학생과 교직원을 위한 무료 부트캠프도 정기적으로 운영 중이다.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능력: 협업
커리큘럼의 변화와 함께 학생들 사이에서는 AI 시대에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경쟁력으로 ‘협업 능력’이 떠오르고 있다. 컴퓨터공학과 4학년인 케일럽 모반은 “특정 작업을 수행하는 방법을 아는 것도 좋지만, 동료들과 협력하여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팀원들은 각기 다른 경험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AI가 이들 사이에서 원활하게 협업하기는 어렵다”며 “팀원들과 접근 방식이나 결정 사항을 논의하고 소통하는 능력은 직무 현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역량”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기술적인 빈틈을 메우는 것을 넘어, 인간 대 인간의 상호작용이 여전히 대체 불가능한 영역임을 보여준다.
급변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도 교육 현장의 전망은 비관적이지 않다. 마두메 담당자는 “우리 학생들은 코로나19라는 거대한 혼란을 견뎌냈고, 이제 생성형 AI의 가속화라는 새로운 파도를 맞이하고 있다”며 “역동적인 세상에서 성장해 온 학생들이기에 충분히 준비되어 있으며, 그들의 잠재력을 믿는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