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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항쟁 30주년 ②] 내가 되돌아 본 1986년부터 1987년 6월까지…이정호, 1987년 민주화 항쟁의 결과…'반드시 진실은 드러난다'는 사실
이정호 자유기고가  |  dailies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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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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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즈】이정호 자유기고가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시민의 힘으로 군부독재를 타파하고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쟁취했다. 이는 당시로선 상상할 수도 없던 일로 한국 현대사에 커다란 획을 그으면서 역사에 깊은 자국을 남겼다. 이에 <데일리즈>는 민주화 의지가 거셌던 1986~1987년을 기억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30년 전 1986년 4월 28일 서울대생 김세진, 이재호가 분신자살했다. 그전에도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그해 4월에 접한 분신 소식은 나에게 남 다르게 다가왔다.

나는 대학 1학년이었다. 낯선 대학문화에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는 시기였고, 대학에서 사흘 걸러 한 번씩 벌어지는 시위도 낯선 눈길로 바라보던 시기였다.

의문이었다. 스스로 몸에 불을 지를 정도로 분노할 수도 있는 것인지, 스스로를 희생해서라도 진실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뿐인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지….

처음엔 눈에 보이는 대로 보고 판단했다. 소수의 운동권 학생들이 교문 앞에서 전투경찰들과 싸우고 있었다.

전경들이 최루탄을 직사로 쏘는 것도 폭력적이지만 학생들도 폭력적이다. 화염병과 돌, 각목들은 뭔가 정권이 잘못한 것은 맞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저항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대다수의 학생들이 학업에 지장을 받고 있었다. 독재정권인 것은 맞지만 내가 살아가는데 특별히 지장을 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나라가 ‘커다란 돼지우리’라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바깥세상이 어떻게 보든 돼지 입장에서는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문제 될 것 없는 것. 바깥에서 보면 그냥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돼지우리라는 것이다.

그 동안에는 왜 모르고 살아왔던가? TV나 뉴스가 돼지우리를 홍보하고 있었고 사법부의 기소와 판결이 돼지우리 주인이라는 사람들을 비호하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안기부(현 국가정보원)와 같은 공안 기관이 으르렁 거리며 돼지우리를 지키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학교에서도 돼지우리에서 잘 사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갈등이 시작됐다. 그럼 나도 돌과 화염병을 들고 싸워야 하나? 일단 무서움이 앞섰다.싸움이라는 것 자체가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고, 집안 형편도 어려운데 부모님이 아시면 얼마나 걱정하실까?

3학년부터는 교직 과목을 이수해 교사가 되는 것이 목표인데, 그것을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되면 앞으로 먹고 사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지….

갈등과 번민 속에도 대학생활은 계속됐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1학년생활이 끝났다.

2학년이 되던 1987년 1월에 박종철이 죽었다.

정권에 반대하면 사람을 고문하고 죽여도 되는 것인가? 사람을 고문하고 죽인 손으로 어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장면이 떠올랐다. 이 나라에서는 그것도 어엿한 직업인가?

그러고 보니 운동권 학생, 재야인사, 야당인사, 노조간부 등은 이 정권에서 언제 죽을지도 모를 사람들이었다. 나의 갈등지수는 낮아지고 분노와 열정지수는 높아져 갔다.

1987년 봄, 4ㆍ13호헌 조치가 발표됐다. 신군부 정권은 그들의 권력을 연장하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 시기의 나는 과 동기 세연이, 미진이와 함께 공부를 하고 있었다. 역사와 경제, 정치와 철학 서적을 공부하고 토론했다. 우리는 같은 그룹에 속해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때의 나는 상황을 합리적으로 바라보고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해 실천해야 한다는 생각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거리로 나가서 국민들과 만나야 하고 함께 싸워야 한다. 국민들에게 독재타도와 민주주의 쟁취를 함께 외치자고 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아는 국민인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사는 것이 바쁘실 뿐,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 선후배들도 각자 생각이 달랐다. 날마다 시위가 계속되는 학내 상황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친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열정지수는 계속 올라갔다. 술자리에서는 누구하고라도 시국토론을 벌였다. 의견이 다른 친구와 사이가 틀어질 정도로 격렬한 토론을 벌였고 사소한 방법의 차이도 그냥 넘기지 않고 설득하려고 질긴 토론을 벌였다.

학내시위, 가두시위에 여러 번 참여했다. 화염병도 던졌다. 그것을 만질 때마다 떨리고 두려웠지만 저들이 폭력으로 우리를 가두고 말살하니까 우리도 폭력으로 맞서는 것이라고 여겼다. 겉모습은 그랬다.

하지만 소수의 학생들만 싸우는 형세였다. 방송과 신문은 학생들의 시위소식을 거의 전하지 않았다. 외로운 싸움이었다.

   
▲ 6월 민주항쟁30년 기념, 부산사업추진위원회에서 보여진 '민중미술 2017' 소장작품. ⓒ뉴시스
그해 6월이 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느꼈다.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인가? 일말의 의문이 마음 한 구석에 있었다. 열정과 이성 사이, 또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시국은 엄중하게 흘러갔다.

5ㆍ18 학내집회에서 격렬하게 싸웠다. 그날 천주교 김승훈 신부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축소 은폐됐다고 폭로했다. 민정당이 노태우를 차기 대통령후보로 정했다. 6월 10일에 공식 선출한다고 밝혔다.

재야인사가 주축이 된 국민운동본부는 6월 10일에 집회를 열겠다고 발표했다. 전국의 거의 모든 대학생들은 동맹휴업을 결의했다.

내가 속해있던 국사학과 총회에서 수업거부를 결의했다. 당시 나는 과대표였다. 부대표였던 성경이와 함께 지도교수인 박모 교수를 찾아가서 당분간 수업거부를 하기로 했다고 말씀드렸다.

박 교수는 알았다고 하셨다. 말씀을 드리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었지만 박 교수의 반응은 차분했다.

6월 10일이 됐다. 내가 속한 그룹은 서울 종로3가 피카디리극장 앞에서 가두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그전에도 몇 번 가두시위에 나간 적이 있다.

나갈 때마다 떨리고 두려웠다. 나의 열정이 그 두려움을 이길 수 없음에 괴로웠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떨리는 가슴을 안고 세연이와 함께 나갔다.

우리는 화염병을 점퍼 안주머니 양쪽에 하나씩 넣어두고 있었다. 그것을 지니고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이 천리 길 같았다. 화염병 운반도 그날이 처음이었다.

안경을 낀 키가 작은 여학생이 눈에 띄었다.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화염병 아니면 현수막이리라. 저렇게 순하게 생긴 여학생이 어떻게 해서 이 싸움에 나섰는가?

하긴 내 동기 미진이도 키가 작고 순하게 생겼지….

정해진 시간이 되자 한 사람이 구호를 외치며 길거리 한복판으로 달려 나갔다. 나도 세연이와 함께 달려 나갔다. 순식간에 우리 학생들이 거리를 점거했다. 구호를 외쳤다. '독재 타도! 민주 쟁취!'

차들이 멈춰 섰다.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우리를 바라봤다. 사람들은 아직은 구경하는 사람이었다.

5분이나 되었을까 백골단과 전경들이 몰려왔다. 화염병을 꺼내 들었다.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세연이가 먼저 불을 붙였다. 나도 따라 붙였다. 전경들의 방패를 향해 던졌다.

전경들은 방패를 앞세우고 다가왔다. 곧이어 청자켓과 청바지에 흰 헬멧을 쓴 백골단이 곤봉을 휘두르며 우리들에게 달려들었다. 우리는 흩어졌다. 나도 골목으로 피신했다. 어느 상가 안으로 들어가 숨죽이고 있었다.

상가 안의 사람들은 우리를 숨겨주었다. 바깥에서 다시 구호외치는 소리가 들릴 때 다시 나왔다. 그러다가 다시 백골단이 몰려오면 도망갔다가 다시 모이는 상황이 반복됐다.

한동안 시간이 흐른 뒤에도 우리는 전경과 대치하고 있었다. 다른 날에는 백골단에 쫓기면서 바로 해산 당했을 텐데 그날은 우리가 버티고 있었다. 최루탄의 매운맛은 문제도 아니었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화염병이 나왔는지 우리는 전경들과 계속해서 공방을 주고받았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돌격 앞으로’ 라는 외침과 함께 전경들의 방패를 향해 집중공격을 했을 때 전경들이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전경들이 도망가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전경 두어 명이 우리의 손에 잡혔다. 몇 명이 달려들어 무장을 해제시켰다. 얼굴이 드러난 전경들은 우리와 똑같은 젊은이들이었다.

일부 학생들이 전경들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려 하자 주위의 다른 학생들이 말렸다. 그들도 피해자다. 누가 우리 대한민국의 젊은이들끼리 싸우도록 만들었는가?

우리는 피카디리와 단성사가 있는 종로거리를 점거했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우리의 구호를 따라서 외치고 있는 것을 봤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봤다.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학생이 아닌 국민들도 우리편이였구나.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었다. 속에서 터져 나올 것 같은 눈물을 참았다. 내가 헛되지 않았구나.

30분쯤 지나자 일명 '지랄탄'이라고 하는 다발 최루탄 터지는 소리가 나더니 종로 1가 쪽에서 최루탄 발사용 차량을 앞세우고 전경, 백골단들이 몰려왔다. 새까맣게 몰려온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그 많은 수를 보고 누군가가 외쳤다. '다음 장소로…!'

명동근처에서 다시 시위가 진행됐다. 어김없이 백골단이 몰려왔다. 우리는 퇴계로 쪽으로 밀리면서 시위를 계속했다. 을지로와 퇴계로를 오가며 날이 어두워지고서도 시위는 계속됐다.

그 과정에서 거듭 보았다. 시민들이 우리의 구호를 따라서 외치는 모습을, 박수를 치면서, 어디선가 담배가 날아왔고 누군가가 내 손에 빵을 쥐어줬다. 가슴이 너무 벅찼다.

친구들, 선배들은 흩어져서 내 옆에 세연이도 미진이도 없었지만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하루 종일 뛰어 다녔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6월 11일 이후에는 아예 전면적인 동맹휴업이었다. 학내 시위에 이어서 가두시위가 계속되었다. 전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던 친구들도 시위에 나섰다.

나는 1학년 후배들이 가두시위에 나간다고 하면 보호자 역할을 겸해서 나가곤 했다. 그리고 12일, 15일, 18일 가두시위가 계속됐고 종로, 명동거리는 곧잘 우리의 해방구가 됐다.

그리고 거리의 시민들은 우리편이었다. 몇 번 전경들에게 잡힐 뻔 한 적도 있었지만 운 좋게 잡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후 3, 4학년 때 여러 번 잡혀 전경에게 신세 아닌 신세를 져야만 했다.

군대가 투입될 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다. 역사에서 이미 있어왔던 일이었다. 하루하루가 벅차면서도 두려웠다. 군대가 투입되면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는가? 내 자신에게 물었지만 확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시위의 규모는 점점 커졌다.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던 신문들도 시위소식을 1면에 올렸다.
26일 또다시 큰 규모의 시위가 있었다. 종각 부근에서 전경들과 대치했다. 시위대의 규모가 커져서 전경들이 직접 공격해오지 못했다.

지랄탄을 쏘면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드는 양상으로 계속됐다. 아무 건물이나 상가에 숨어 있다가 다시 나오곤 했다. 상가의 시민들은 우리 편이었다.

백골단이 곤봉을 휘두르며 달려들 때도 일단은 흩어졌다가 다시 모였다. 잡히면 개처럼 맞으면서 끌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분노가 솟구쳤다. 분노는 다시 격렬한 시위로 이어졌다.

29일 노태우가 대통령 직선제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날 이후 시위는 멈췄다. 승리했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국민들이 싸웠는데 그 결과물이 야당의 대선승리로 귀결 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가? 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고 있는 사이에 야당이 분열되었다. 노태우가 대통령이 됐다.

그 뜨거웠던 6월 우리가 싸워서 얻은 것이 무엇인가?

대통령 직선제 등 형식적 민주주의를 얻었고 그리고 더 큰 것을 얻었다. '반드시 진실은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불의한 권력은 국민들이 용서하지 않는다. 국민들은 침묵하는 돼지우리 속의 돼지가 아니었다.

2016년 6월 - 6월 항쟁의 주역이라는 세대의 한 사람으로 살아왔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을 직접선거로 선출하는 민주주의 나라로 정착됐다. 그런데 나는, 또 우리 국민은 정말 이 나라의 주인인 것 맞는가?

2017년 6월 - 국민은 역시나 불의한 권력을 용서하지 않았다.

 

필자 :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86학번 이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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