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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ㆍ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다시 만난 4인의 열사5ㆍ18 당시부터 6월항쟁까지…박관현ㆍ표정두ㆍ조성만ㆍ박래전 열사
신중한 기자  |  dailies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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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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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즈】신중한 기자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 중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4명의 열사가 눈길을 끌었다.

특히 이날 기념식장에서 목 놓아 울었던 강기정 전 국회의원도 주목이 됐다.

18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강 전 의원은 "표정두 열사는 고등학교 제 친구인데 야학도 하고 이름없이 살다가 1987년에 분신했다. 박관현 열사는 제가 민주주의 운동에 끼어들게 된 계기였다. (그들의) 이름을 부르자 정말 울컥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되고 숨져간 이름없는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복원시켜주고, 정말 달랐던 것 기념식이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강 전 의원은 현재 5ㆍ18 민주화운동왜곡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5월의 죽음과 광주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며 세상에 알리려 했던 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도 함께 기리고 싶다"라며 네 사람을 소개했다.

광주민주화운동 과정에는 수많은 열사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박관현 열사는 운동의 서막을 연 사람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1980년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었던 박 열사는 5월 16일 오후 6시, 구 전남도청 앞 광장 분수대 앞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횃불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꺼지지 않는 횃불과 같이 우리 민주의 열정을 온 누리에 밝히자는 뜻에서 이 자리에 모였다"라며 "우리의 요구와 주장은 비상계엄을 해제하고 민주화 일정을 밝히는 것"이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연설을 마친 그는 사람들을 이끌고 평화행진을 진행하는 등 5ㆍ18 직전까지 광주 시민과 학생들의 반독재투쟁을 주도했다.

하지만 17일 비상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재야 인사들이 하나 둘 잡혀 들어가기 시작하자 박 열사는 주변의 권유에 어쩔 수 없이 여수로 도피했다.

하지만 그는 죄책감을 죽을 때까지 덜지 못한 나머지 1982년 4월 체포돼 1심에서 5년형을 선고 받고 광주교도소에 수감됐다.

그는 항소심 도중 진상규명을 위해 40일간의 단식을 진행하다 안타깝게 옥사했다. 

이후 민주화운동 관련자 대부분이 재심을 통해 무죄를 인정받자, 박 열사의 가족이 2012년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광주지법은 "항소심 재판 중 숨져 1심 유죄 판결이 공소기각으로 효력을 잃었다"며 기각했다.

표정두 열사는 1980년 당시 고등학생 신분으로 항쟁에 참여했다가 정학처분을 받았을 정도로 사회정의감이 투철했다.

이후 1983년에 호남대에 입학했으나 가정환경이 어려워 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3년 만에 제적당하고 이듬해 하남공단 신흥금속에 입사해 미국과 군부독재가 저지른 광주항쟁의 만행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그러던 중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하자 불합리한 세상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나머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근처 하적장 부근에서 몸에 불을 붙인 후 "박종철을 살려내라", "광주사태 책임지라" 등의 구호를 외치다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망했고 2001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다.

가톨릭 신자였던 조성만 열사는 신부가 되길 꿈꿨지만 부모의 반대로 1984년 서울대 화학과에 진학했다.

그 시기는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학생민주화 운동의 태동기로, 가톨릭 청년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했던 조 열사는 자연스럽게 암울한 사회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민주화 운동을 전개했던 서클에도 가입했다.

조 열사는 군 제대 직후 1987년 "온몸으로 살지 못하는 내 자신이 너무 한심스럽다"라며 민주화운동 8년을 맞이한 이듬해 5월 15일 명동성당 구내 교육관 4층 옥상에서 준비해둔 유서를 뿌리고 투신했다.

그는 유서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한 우리의 형제들이 고통 받고 있다"며 이 같은 현실은 "기성세대에 대한 처절한 반항과, 우리 후손에게 자랑스러운 조국을 남겨주어야 한다는 의무감만을 깊게 간직하게 했다"라고 적었다.

당시 장례식에 김영삼ㆍ김대중 전 대통령이 참석할 정도로 그의 죽음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1982년 숭실대 국문학과에 진학한 박래전 열사는 1987년 6월항쟁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대선에서 노태우 씨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민주화운동이 희미해져가고 있음에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박 열사는 그런 사회적 환경변화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그 해 6월 숭실대 학생회관 옥상에 올라가 "광주는 살아있다! 군사파쇼 타도하자"를 외치며 몸에 불을 붙였다.

박 열사의 죽음 이후 인권운동가가 된 그의 형 박래군 씨는 한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사람이 죽어도 미동도 안 하고 관심도 안 보이는 현실에 대해 (동생과) 얘기했던 게 기억난다. 그게 마지막으로 본 동생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후 박래전 열사는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고, 보상금 1억5,000만 원이 유족에게 전달됐지만 가족들은 박 열사의 뜻을 기리는 차원에서 인권단체에 모두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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