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둘레길은 보물길 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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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둘레길은 보물길 ⑩
  • 寒井 박춘식 자유기고가
  • 승인 2020.04.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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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향교
과천향교

옛 사람들도 공부 못하면 풍수 탓.......

과천향교는 관악산 남쪽방향에서 연주대에 오르는 등산객들이 주로 찾는 곳으로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며, 특히 여름날엔 계곡의 풍부한 수량(水量)과 우거지 숲으로 인해 피서객(避暑客)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입니다.
 
연주대까지는 1시간30분 정도가 소요되는데 노약자들은 2시간 정도 예상하면 될 듯 합니다.
 
계곡 초입에는 과천향교 권역임을 알리는 붉은색 칠을 하고 위엔 화살모양의 나무살이 달린 홍살문(紅箭門)이 있습니다. 홍살문의 붉은색은 벽사(?邪)의 의미가 있으니 악귀를 물리치고자 함이며, 화살 또한 나쁜 액운을 공격해 막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보통은 사당(廟)· 능(陵)·원(園)·묘(墓) 등의 입구에 홍살문을 세움으로써 성스러운 영역의 입구임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도리이(鳥居)', 인도의 '토라나(torana)', 중국의 '패루(牌樓)'는 홍살문과 비슷한 구조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향교 입구엔 3줄로 된 계단이 있는데 오른쪽은 오르는 계단, 왼쪽은 내려오는 계단이며, 중앙은 신도(神道)이므로 사람들은 함부로 오르내리면 안됩니다.
 
또한 계단에서 뛰어서는 안되며 오른발을 딛고 왼발을 오른발 옆에 갖다 붙이는 식으로 합보(合步)를 하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오르는게 예의입니다. 다만 이곳 계단은 조금 높기 때문에 인내가 조금 필요합니다.
 
계단 위에는 외삼문이 있는데 들어갈 땐 역시 오른쪽 문, 나올 땐 왼쪽 문으로 출입하면 됩니다.

 
향교(鄕校)나 서원(書院)은 유교이념을 바탕으로 공자 등 선현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학생을 가르치던 교육기관입니다. 대개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이루는데 즉 앞쪽에는 명륜당(明倫堂)과 동재(東齋), 서재(西齋)가 있어서 공부와 기숙(寄宿)하는 공간이며, 뒤쪽은 문묘(文廟)로서 대성전(大成殿)과 동무(東?), 서무(西?)가 있어서 중국 5성인 공자, 안자, 증자, 자사자, 맹자와 송나라 2현 정호, 주희와 우리나라 동방18현의 위패를 모신 제사 공간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과천향교에는 동재, 서재, 동무, 서무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향교가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 등을 내려서 운영되던 국립교육기관이라면, 서원은 지방의 유학자들에 의해 운영되던 사립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당(書堂)이 초등학교라면 서울의 사학(四學)과 지방의 향교 및 서원은 중`고등학교에 해당하고 성균관(成均館)은 대학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방의 어지간한 군현에는 향교나 서원이 있었으니 지금도 향교가 있던 곳엔 교동이란 지명이 살아있고 서원이 있던 곳은 서원동이란 지명이 남아 있습니다.
 
관악구에 신림본동이 지금은 서원동으로 불리고 있는데, 신림사거리 포도몰 건물 뒤편엔 서원이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과천향교 아래 교동길은 향교에서 따온 지명이라 하겠습니다.
 
과천향교는 창건 당시엔 과천관아에서 동북으로 2리쯤에 있었습니다. 현감은 매월 향교내의 교육현황을 관찰사에게 보고하였으며 학생들의 교육성취도는 군수· 현감들의 인사평가에도 반영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과천향교에서는 큰 인물이 나오질 못했는데 결국 터가 좋지 않다하여 숙종 16년(1690)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인사평가가 안좋았던 과천현감은 괜히 무슨 핑계라도 대고 싶었나 봅니다. 하지만 그 후에도 과천향교에서는 큰 인물이 별로 안 나온 듯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돈 좀 있다하면 한양으로 자식을 보내 사학(四學)에서 공부시키거나, 유명한 스승을 찾아가 사립인 서원(書院)에서 공부하게 했으니, 예나 지금이나 교육열은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일제때는 시흥· 안산· 과천 등이 합쳐지면서 시흥향교· 안산향교· 과천향교도 하나로 합쳐졌는데 시흥향교와 안산향교는 없어지고 과천향교만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향교는 갑오개혁이후에는 교육의 기능은 사라지고 제향의 기능만 존속되고 있는데 봄과 가을엔 석전대제를, 그리고 음력 초하루와 보름엔 분향삭망례를 지내고 있습니다.
 
향교의 교육적 기능은 사라졌지만 그 전통과 얼을 되살리기 위함인지 교동마을엔 이제 과천중, 과천여고, 과천외고 등이 자리를 하고 있으니, 어허, 어여 큰 인물이 좀 나와야 할 터인데........


 
자하동(紫霞洞)의 시경(詩境)에서 ......

 
서울대 정문쪽 계곡, 그러니까 북자하동에 있던 너저분한 유흥식당들은 20여년 전쯤에 정화사업으로 전부 철거되어 상인들은 상가건물로 옮겨가고 계곡은 시민들에게 돌아 왔습니다만, 이곳 동자하동은 아직도 상가 식당들이 계곡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식당 간판 옆에는 ‘관악산지킴이’란 현판도 걸려 있습니다.
 
이렇듯 지금은 계곡입구의 식당들과 케이블카 등으로 본래의 모습이 많이 훼손되었으나, 과천향교 주변은 경치가 수려하여 자하동천(紫霞洞天)이라 불리던 곳이었으니, 계곡 건너편의 바위절벽엔 빼어난 글씨의 암각문들이 있습니다.

단하시경
단하시경

 

 바위에는 4종의 암각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丹霞詩境(단하시경)'은 추사 김정희나 자하 신위의 글씨로 추정되고, '紫霞洞門(자하동문)', '白雲山人 紫霞洞天(백운산인 자하동천)'은 자하 신위선생의 글씨라 합니다. 또한 '題伽倻山讀書堂(제가야산독서당)'이란 신라 최치원의 시는 우암 송시열의 글씨입니다.

 
'丹霞詩境'의 丹霞(단하)는 붉은 노을이고, 詩境(시경)은 시심을 일으키는 아름다운 곳이란 뜻이겠지요.
 
'紫霞洞門(자하동문)', '白雲山人 紫霞洞天(백운산인 자하동천)'.

백운산인 자하동천
백운산인 자하동천

 

 우리 선조들은 경치가 수려한 곳을 찾아다니며 바위에다가 OO동천(OO洞天), OO동문(OO洞門)이라고 새겨 놓기를 좋아했습니다.
 
동천(洞天)이란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으로 가히 신선들이 살만한 곳을 말합니다, 그리고 동문(洞門)은 동천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말하겠죠.
 
백운동천, 백석동천, 백련동천, 쌍류동천, 금류동천, 벽운동천, 수락동천, 삼청동문, 도봉동문, 명월동문 등은 모두 서울 근교 산의 동천과 동문 바위글씨들이니 이를 찾아다니는 탐방도 흥미롭습니다.

자하동문
자하동문

 

 관악산의 봉우리들은 동서남북으로 깊고 수려한 계곡을 이루는데, 특히 물이 풍부하고 경치가 좋은 네 곳이 있어 이를 각각 동자하동(과천향교 계곡), 서자하동(삼막사 계곡), 남자하동(안양예술공원 계곡), 북자하동(서울대학교 정문 계곡)이라 하였습니다.
 
동자하동은 관악산 연주대의 연주샘에서 발원한 물이 골짜기를 따라 동쪽으로 흐르다가 완만한 이 곳에서 깎아지른 듯한 바위와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자하동천(紫霞洞天)을 만들었고 그 맑은 물은 양재천(良才川)을 이루다가 탄천(炭川)과 합하고 다시 한강을 이루며 서해로 흘러갑니다.

 
신위(申緯·1769 ~1845) 선생의 호는 자하(紫霞)이며 본관은 평산입니다. 조선시대 정조, 순조, 헌종에 이르는 3대에 걸쳐 시(詩), 서(書), 화(畵)로 유명한 삼절(三絶)로서 벼슬은 도승지(都承旨)를 거쳐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이르렀으나 노년에는 관직을 모두 버리고 고향인 북자하동(현 서울대학교 정문쪽에 있던 마을)으로 내려와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의 시는 그의 둘째아들 신명연(申命衍)이 편찬한『경수당전고(警修堂全藁)』에 총 4,000여편이 전하고 있습니다.


       菊       
                - 자하 신위
有客同觴固可意  (유객동상고가의) 
無人獨酌未爲非  (무인독작미위비) 
壺乾恐被黃花笑  (호건공피황화소) 
典却圖書又典衣  (전각도서우전의) 

  국화 앞에서
벗 있어 함께 술잔 기울여야 제격이나
벗 없어 혼자라도 나쁘지는 않으리
술병에 바닥이 보이면 노란 꽃이 비웃을까
책을 먼저 잡히고 또 옷을 잡히러 보내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데 자하선생도 어지간히 술을 좋아하셨나 봅니다. 책 잡히고 옷 잡히며 술을 드셨다니....^^
 
논어(論語)의 위정(爲政)편에서 “시경(詩經)에 삼백편의 시는 한마디로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고 하였는데, 어디 시경(詩經)의 시뿐이겠습니까?...
 
단하시경(丹霞詩境) 암각바위 위에 앉아 쉬며 시를 읊자니, 건너편 유흥음식점에 붙어있는 “관악산지킴이”란 갑판에서 사특함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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