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둘레길은 보물길 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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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둘레길은 보물길 ⑧
  • 데일리즈 寒井 박춘식 자유기고가
  • 승인 2019.11.2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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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가 승천한 계곡에 발 담그니......

용마골 지역과 무너미골 등은 옛 하리(下里) 마을사람들이 산나물을 뜯고 땔감을 구하면서 남태령 백토로 도자기를 만들며 살아왔던 지역이었습니다. 지금도 하리마을 곳곳에는 도자기 파편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특히 무너미골에서는 도자기를 굽던 가마터가 발견되었고 용마골 여기저기에서도 질그룻 파편들이 발견되고 있으나 아직 이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리마을은 예로부터 서울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였고, 지금도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방어요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태령마애불
남태령마애불

민간인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출입통제구역이 많다보니 용마골에서 관악산으로 오르는 코스는 많이 제한적입니다. 특히 남태령 능선에 있는 마애불상도 송암사 북쪽 능선을 따라 오르면 좋으련만 군부대로 인하여 이쪽에선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철조망에 갇히어 다양한 문화 사적지들이 잠들어 있는 이 곳이 혹시라도 학술조사 없이 파괴되는 일이 없길 바라면서, 송암사에서 왔던 길을 200m쯤 내려와 우측 길을 따라서 용마골 계곡으로 향합니다.
 
용마골 계곡 입구엔 관리소가 있어서 계곡에 적당한 물이 흐르면 계곡 통행을 허가하고 폭우 등으로 물이 불어나면 출입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이 곳은 관악산 559봉에서 시원(始原)한 맑은 계곡물이 넓고도 긴 암반 위로 흐르는 멋진 휴식지로 더운 날 잠시 쉬기엔 그만인 곳입니다. 암반의 길이는 수백미터에 이르며 하나의 바위 위로 물이 흐르는데, 수량이 넉넉한 여름날 이 곳을 찾는다면 더위를 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막걸리 한 사발에 번뇌마저 떨쳐내기 좋은 곳입니다.

계곡물 흐르는 곳에 바위의 맑은 물소리를 들으며 탁족하는 것은 국립공원인 도봉산과는 다른 관악산의 소탈한 매력이니 관악산 둘레길을 걷다가 계곡물 유혹하는 곳 있다면 발 담그고 잠시 쉬면 좋을 것입니다.

용마골계곡
용마골계곡

오늘은 계곡물 넉넉한 이 곳에서 고려때의 대문호 이규보(李奎報)의 탁족(濯足) 시 한편 읽으며 잠시 여유로움을 가져봅니다.

石間流水本無情 (석간류수본무정)
豈恥世人來濯足 (기치세인래탁족)
我緣世上埃垢重 (아연세상애구중)
脚未下泉先愧恧 (각미하천선괴뉵)
待渠洗了足底塵 (대거세료족저진)
下手無慙弄澄綠 (하수무참롱징록)  

바위 사이 흐르는 물 본디 정이 없으니 
세상사람 와서 발 씻기를 어찌 부끄러워하랴만
나는 세상의 때 많이 묻었기에 
물에 발 담그기도 전에 부끄럽구나 
발바닥 때 씻은 물에 기다려
부끄럽지 않은 손 담그며 맑고 푸름을 희롱하네      
                                     -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

 
계곡에서의 평온한 휴식을 뒤로하고 일어설 때는 참으로 아쉽습니다. 하지만 이제 찾아갈 곳도 또한 평온한 곳이니, 평온할 온(穩)이 두 개나 들어간 온온사(穩穩舍)라는 곳입니다.   계곡의 물길을 따라 있는'삼남길'안내리본을 쫓아 이리저리 가다보면 능선에 이르고 그 능선고개를 넘어 내려서면 과천성당을 지나 온온사로 가는 길이 이어집니다. 이 길은 계곡부터 이어진 '삼남길'안내판을 따라 걸으면 쉽게 찾아갈 수 있습니다.


 
충의공 최몽량 묘역의 문인석은 미완(未完) ?....

1금관조복 문인석 2복두공복 문인석  3.4 최몽량 묘역의 문인석 앞뒤모습
1금관조복 문인석 2복두공복 문인석 3.4 최몽량 묘역의 문인석 앞뒤모습

온온사(穩穩舍)에 가기 전, 능선고개 바로 3m 아래에서 우측으로 네이버지도에 ‘최몽량묘’로 검색이 되는 곳으로 우선 향합니다. 우측 길에서 계곡을 한번 더 건넌 후 계곡 옆길로 쭈욱 걷기만 하면 묘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최몽량(崔夢亮)은 과천현에서 태어난 인물로 조선 인조때 이괄이 난을 일으키자 임금을 모시고 공주까지 호종하여 그 공을 인정받아 6품계가 올랐으며, 그 후 의주부윤 이완(李莞:이순신장군의 조카로 노량해전에서 숙부의 죽음을 알리지 않고 북을 치며 독려하여 승리로 이끌었음)과 함께 의주판관으로 있던 중 1627년에 정묘호란을 겪었습니다.
 
후금과의 첫 싸움에서 패한 최몽량은 포로가 되었으나 끝까지 항복하지 않았으며 결국 아우 최몽직과 조카들까지 모두 죽임을 당하였고, 의주부윤 이완도 화약고에 불을 지르고 자결하였습니다. 사후에 최몽량은 영의정에까지 추증되었고 시호(諡號)는 충의공(忠毅公)입니다.

충의공 최몽량 묘역의 석물 중에 문인석(文人石)은 얼굴의 형체를 거의 알아 볼 수가 없을 정도로 마모가 심합니다. 누군가는 "충의공을 닮은 아들을 얻고자 하는 이들이 문인석의 코를 갈아다 마신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말을 합니다만, 제 생각엔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문인석을 다듬다가 중단된 것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단순한 마모의 흔적이라고 보기엔 상체부분의 얼굴 윤곽이 거의 없고, 오히려 덜 깍인듯한 얼굴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 문인석 윗부분의 머리에 쓴 금관이나 복두의 형체는 다른 문인석의 모습과 비교했을 때 형태를 전혀 알아 볼 수가 없으며, 오히려 형체를 다듬지 않은 돌기둥의 모습처럼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석공은 대강 다듬어진 돌기둥 형태의 화강암을 어딘가에서 이곳으로 가져와서 제 위치에 각각 세워두고 문인석을 만들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문인석의 아랫부분부터 차차 다듬어져 금관(金冠)과 얼굴부분을 만들 때쯤 무슨 이유에선지 작업이 중단되었으니, 문인석의 상체뿐 아니라 조복(朝服)의 옷자락과 홀을 쥔 손 등의 형체도 완전히 다듬어진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 후 문인석은 미완의 상태로 그 자리에서 그대로 전해 온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이는 작자의 단순한 추측성 주장이니, 누군가가 나서 그 이유를 명료하게 밝혀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충의공 최몽량묘역
충의공 최몽량묘역

충의공 묘역은 용호가 감싸 안은 형국에 멀리 청계산까지 조망되는 확트인 곳에 위치하니 잠시라도 더 머물다 가고픈 명당지입니다. 이렇듯 명당들의 공통점은 누구나 한번 와보더라도 왠지 그 곳에 앉아 쉬고픈 마음이 들게 하는 지력이 있습니다. 다만, 땅의 형세도 세월을 따라 변하게 되니, 이곳 묘역은 지척에 있는 과천경마공원의 말발굽소리에 "또 다시 오랑캐의 침략인가?"하여 충의공께서 잠 못 들어 하실까 염려됩니다.
 
묘역을 내려와 온온사로 향하는 길의 도로가엔 근대에 세워진 그의 신도비도 있으니 살펴봐야겠습니다.


 
온온사의 600살 은행나무는 아직도 청춘이라네......

온온사 은행나무
온온사 은행나무

최몽량의 신도비와 과천성당을 지나 우측 길로 걷어서 온온사 입구에 이르니 커다란 은행나무 한 그루가 반겨줍니다. 수령이 600년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은행잎들이 무성하여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하기야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는 1,100살인데도 열매를 풍성하게 맺고 있으니 600년의 나이야 청년 축에 속하겠지요.
 
은행나무는 이파리가 오리발을 닮아서 압각수(鴨脚樹)라고 부르기도 하고, 묘목을 심은 후에 손자 때가 되어야 열매를 얻을 수 있다고 해서 공손수(公孫樹)라고도 부릅니다. 은행나무를 두고 흔히들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말을 하는데 2억5천만년 전에도 지구상에 존재했던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공룡들과 중생대를 함께 살았으며 빙하기까지 견뎌낸 참으로 대단한 나무인 것입니다.
 
은행나무과는 종류가 단 하나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장미과하면 찔레, 해당화 등 수 백가지의 장미종의 식물들이 있으나 은행나무는 은행나무과 은행나무속 은행나무종이 단 하나라고 하니 정말 완벽한 나무입니다. 어릴 적에 과학시험에서 활엽수로 답을 했다가 틀렸던 기억이 나는 낙엽침엽수...... 
 
그런데 이곳 은행나무는 자세히 보니 열매가 전혀 보이질 않습니다.
 "아하! 숫나무이구나."
 
은행나무는 암수가 딴 그루입니다. 즉, 열매가 열리면 암나무, 안 열리면 숫나무입니다.
 
은행(銀杏)나무는 '은빛 살구나무'라는 뜻을 담고 있으니, 열매가 노랗게 익다가 주황빛으로 익어서 바닥에 나뒹굴 땐 정말 살구를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은행나무는 도시의 가로수로도 많이 심어져 있는데 병충해에 강한 점도 있지만, 자동차 배기가스를 흡수하는 정화력도 매우 뛰어나다고 합니다.
 
한편 가을에 길가에 떨어진 주황색 열매를 신발로 밟기라도 하면 그 냄새가 지독히도 구리구리하기에 이를 피하려고 까치발하며 걷는 도시인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엔 떨어진 은행들을 많이들 주워 갔는데 요즈음은 줍는 분들이 드문 듯 합니다.
 
그 이유인즉, 떨어진 것을 줍기만 해도 '절도죄나 점유이탈물횡령죄'로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니, 당연히 줍는 분들이 적어진 것이지요.
 
이에 도시인들은 냄새 때문에 못 살겠다고 오히려 관할 구청에 빨리 치우라고 민원을 제기하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이제 국회에서는 특별법이라도 만들어 은행(?)은 털어도 되니 제발 주워가라고 홍보해야 할 판 입니다.
 
아! 좋은 방법이 있네요.
 
은행나무의 암나무만 전부 베어 버리든지, 숫나무만 전부 베어 버리든지 하면 냄새 걱정은 없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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