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향재]늙음에 대한 성찰
상태바
[청향재]늙음에 대한 성찰
  • 이수진 칼럼니스트
  • 승인 2019.10.14 12: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일리즈 이수진 칼럼니스트]

나도 언젠가는 지금의 독립적인 삶에서 혼자 설 수 없는 순간과 마주 할 것이다.

그리고는 내 육체가 허물어지는 것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할 것이다.

내가 내 삶에 대한 주도권을 잃어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어떻게든 질병을 치료하고자 안간힘을 쓸 것이며, 그러다가 종국엔 내 삶의 끝을 인식하고 수용하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얼마나 기꺼이 타인으로부터의 의존과 도움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 그 누가 내 삶의 끝까지 내 곁에 남아 있을 것인가?

누구든지 삶의 시작은 부모의 몸을 빌려 태어나고 부모의 사랑과 정성으로 성장하지만, 언젠가는 홀로 서야 할 때가 오게 마련이다.

내 육체의 쇠락은 내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고, 그 누구라도 시간의 흐름에 저항할 수는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육체는 서서히 늙음과 질병이라는 두 가지 벽과 마주하게 될 것이고, 그 때부터 죽음은 삶 최대의 난제가 되는 것이다.

50대의 중반에 들어 선 지금 내게 암이 발현된다면? 사실 이미 내 몸 어딘가에 암이 생겨나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라 해도 놀랄 일은 아닌 것이, 암은 결국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면서 누구라도 비껴갈 수 없는 내 몸 속 이상세포(異狀細胞)의 자가 증식이기 때문이다.

오래 산다는 것은 내 몸 속의 세포가 끊임없이 복제되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세포 복제 시의 돌연변이 또는 오류가 중첩되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에 죽기 전까지 암이 발현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암은 삶의 조건이나 상황과도 물론 관련이 있지만, 오히려 오랜 삶의 필연적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법정 스님도 폐암으로 돌아가지 않았던가? 스님이 공기 좋고 물 맑은 암자와 숲에서 무념무욕의 삶을 살았어도 암은 피하지 못한 걸 보면, 암이란 어쩌면 인간을 포함하는 고등동물 영장류에게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욕망과 다툼, 갈등이 끓이지 않는 대도시에서 어쩔 수 없이 받는 스트레스와 자동차가 뿜어내는 매연, 알코올과 니코틴의 공격 앞에 누구라도 자신의 예상보다 빨리 암이 발현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꼭 암이 아니어도 갑작스러운 심장질환이나 고혈압으로 인한 뇌졸중 또는 뇌경색, 알츠하이머 또는 파킨슨 병 등, 삶이 길어지면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질병들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 내 다리로 걸을 수 있고 내 뇌로 생각할 수 있으며 내 심장으로 온몸에 혈액을 순환시킬 수 있다는 극히 단순한 육체적 기능의 정상적 작동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그럼에도 내 육체가 서서히 늙고 있다는 사실 또한 변함이 없다.

오른쪽 무릎이 아픈지는 꽤 오래 되었고 왼쪽 귀는 이명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손목과 손가락 통증은 도를 넘어선지 오래다.

그뿐인가? 약을 먹으면서 식이요법과 운동으로 조절하고 있지만 고혈압도 무시할 수 없고 허리도 꽤 아픈 편이다.

게다가 노안은 책 읽기와 글쓰기마저 갈수록 지난(至難)한 일로 만들고 있다.

그야말로 육체적 늙음의 확실한 증상들이 내 몸 여기저기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도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떻게 늙음을 받아들이고 늙음에서 무엇을 성찰하는 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육체는 늙어가고 있고 그에 따라 여러 질병들이 언제든 내 몸을 장악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해도, 그래서 내 무릎을 꿇게 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해도, 늙음 자체에 대해 성찰할 여지는 있다고 본다.

, 내 육체의 허물어짐이 내 정신의 허물어짐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어떤 노력을 해야 하며, 타인의 도움으로만 일어설 수 있는 상황에서조차도 나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고 주도권과 자존감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있을지에 대한 정밀(靜謐)한 성찰 말이다.

육체의 허물어짐 자체에 절망할 필요는 없다.

허물어질 때 허물어지더라도 정신을 맑게 유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구체적으로는 매일 매일 적절한 운동과 균형 잡힌 식사, 욕망을 절제하고 돈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다.

나는 내 육체의 주도권 보다 내 정신의 주도권을 끝까지 유지하고 싶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좋은 차 한 잔을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적절한 양의 담백한 식사를 우선으로 하여 고기에 대한 지나친 욕망을 없애며, 음악 감상이나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적절히 해소하고, 독서를 통해 맑고 향기로운 정신을 유지해나가는 것이다.

특히 치매의 경우 지적인 호기심이 많을수록 발병률도 떨어진다고 하니, 매일 독서야말로 내 정신을 날카롭게 벼리고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일등공신인 셈이다.

매일 독서의 대상은 사서삼경으로 대표되는 경전들과 수신서, 역사서 위주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論語莊子같은 경전, 또는 菜根譚이나 士小節같은 수신서, 史記같은 역사서는 결국 인간으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이며, 왜 도덕성과 절제가 삶의 나침반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길잡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매일 매일 경전을 읽고 그 내용을 실천하고자 애쓰는 과정에서도 육체는 서서히 어김없이 허물어져 가겠지만, 정신만큼은 더욱 단단하게 유지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다 비록 홀로 일어설 수 없는 때가 온다 해도, 그 상황 자체가 나를 더욱 무너트리는 원인은 되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내 몸에 암이 발현되거나 심장이나 폐가 제 기능을 못하는 때가 온다 해도, 내 뇌만 제대로 기능한다면 나는 극히 객관적으로 소멸해가는 나의 육체를 바라볼 수 있는 정신의 여유를 누릴 것이다.

한 때는 내 것이었으나 이제는 역할을 다하고 지상을 떠나야 하는 내 육체에게 감사의 말을 전할 것이다.

내 정신의 그릇으로써 나를 담고 함께 살아온 나의 육체에게 진정 고마움과 존경심을 보낼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