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의 교양단상] 칼 힐티 '행복론' (Ⅰ)
상태바
[이수진의 교양단상] 칼 힐티 '행복론' (Ⅰ)
  • 강수연 기자
  • 승인 2019.09.06 15: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일리즈 이수진 칼럼니스트]

2018년 봄 데일리즈에 ‘[교양인의 조건] 교양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여덟 번에 걸쳐 실었는데, 이번에도 칼 힐티의 동일 논문에 나오는 특히 인상 깊었던 몇 몇 구절들에 대해서 개인적인 의견을 추가해보았다.

칼 힐티(Carl Hilty)
칼 힐티(Carl Hilty)

1. 완벽하게 교양을 쌓은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나 주거와 음식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다.

힐티는 이에 대해 도가 지나친 사치나 열 손가락 모두 금반지를 낀다든가, 길게 늘어뜨린 시계 줄을 찬다거나, 빽빽할 정도로 가구를 갖추고 있다거나, 건강을 해칠 정도로 잔치를 벌인다거나 하는 일이 모두 교양 없음을 나타내는 확실한 증거이다.”(p.720)

라고 덧붙이고 있는데, 이것은 지성적인 측면에 관심이 많고 시야 또한 넓고 깊은 사람일수록 일상적인 생활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치 있게 여기는 외모의 화려함이나 고급 음식점에서의 값 비싼 식사 또는 크고 넓은 집에서의 사치스럽고 안락한 생활에 들이는 시간과 금전적 투자에 무관심하다는 뜻일 것이다.

, 겉꾸밈은 타인과의 교류에서 혐오감을 주지 않을 정도로만 신경 쓰고, 음식은 매일의 육체적 생존을 위한 최소의 영양분일 뿐이며, 집은 그저 잠자고 추위나 비바람을 피할 수만 있으면 괜찮다는 일견 극단적 사고의 편향성에서 나오는 자기보존 본능의 가장 밑바닥에 깔린 태도일 것이다.

다만 현대 사회에서는 외모가 곧 권력으로 기능하고 있으므로, 힐티의 생각은 19세기 당시의 가치관을 반영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나 지금이나 교양과 지성적인 면에 힘을 기울이는 사람의 외모를 볼 때, 모두 그렇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저 겉모습의 화려한 꾸밈에 공들이는 사람에 비해 얼마쯤 초라해 보일지는 몰라도 그 대신 눈빛의 형형(炯炯)함과 평범한 외모를 저만치 넘어서는 충만한 지혜의 빛을 발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점은 다치바나 다카시의 사진이나, 조선의 문신이자 서화가인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 1713~1791) 선생의 초상화를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또는 베토벤의 초상화에서 보이듯 며칠씩 감지 않아 마치 히드라처럼 꿈틀거리는 굵은 머리카락 아래 두뇌 속에서 솟아 나오는 선율의 건축적이고도 꽉 찬 아름다움은 어떤가? 이렇게 생각해보면 혁명가 체 게바라(Che Guevara, 본명은 Ernesto Rafael Guevara de la Serna, 1928~1967)야말로 교양인의 대표라 할 수 있다.

그가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며 볼리비아에서 게릴라로 활동할 때 찍은 사진들을 보면 늘 한데서 편하지 못한 잠을 자고 며칠씩 머리를 감지 못하거나 목욕은커녕 샤워도 하지 못해 초췌한 모습들이 많은데, 그럼에도 매일 일기를 썼고 그 일기 속에 자신이 가는 길이 정의로운 길이며, 일말의 후회나 안락한 생활에 대한 동경 따위는 전혀 나타나 있지 않은 것으로 판단할 때 행동하는 지성인이자 자신의 믿음을 향해 결코 한눈팔지 않고 오직 전진하는 교양인으로서의 투철함이 느껴진다.

아름다운 외모와 많은 돈, 좋은 직업과 권력을 너도 나도 동경하고 탐하는 경향이 강한 현대인들은 정작 거기에 매몰되어 자신의 참 모습과는 반대되는 길에서 헤매며 덧없는 욕망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길 바란다. 그보다는 자신이 과연 교양인인가 또는 교양인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추구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길.

힐티의 말로 마무리 하자. “교양 있는 사람의 가장 확실한 외적인 특징은, 이런 의식주의 모든 면에서 전체적인 겉모습이나 생활태도에 일종의 기품과 여유로운 간결함이 드러난다는 점이다.”(p.720)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