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 교수]복사뼈에 세 번 구멍이 나다. '과골삼천(踝骨三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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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교수]복사뼈에 세 번 구멍이 나다. '과골삼천(踝骨三穿)'
  • 이수진 교수
  • 승인 2019.08.19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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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즈 이수진 교수]

다산 정약용
다산 정약용

'과골삼천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한자로는 踝骨三穿이라 쓰는데, 이 말은 다산 선생의 강진 유배 시절 가장 충실했던 제자 치원(巵園) 황상(黃裳, 1788~1870)의 문집 치원유고(巵園遺稿)에 나온다.

황상에 따르면 다산 선생이 유배 20년간 오로지 공부하고 저술에 힘쓰느라 방바닥에 닿은 복사뼈에 구멍이 세 번이나 났다.”고 한다.

이 네 글자를 처음 본 순간 나는 문득 사고가 정지되었고, 잠시 뒤 과연 학문이란 무엇이며 학문에 임하는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다산 선생이 강진 유배 시절에 완성한 방대한 저서들의 권수는 차치하고라도, 그러한 결과물을 가능하게 했던 그야말로 혹독하다고 할 그 도저(到底)한 삶의 태도는 범인(凡人)들이 도무지 흉내 낼 수 없는 마음의 경지에서 나온 것이리라.

폐족의 일원으로써 가문의 몰락과 피붙이들의 참혹한 죽음을 목도하고 언제 끝날지 기약 없는 유배지에서, 그 참담한 심정을 추스르고 오로지 학문에 힘을 쏟아 조선역사상 전무후무하고 전방위에 걸치는 업적을 남긴 다산 정약용.

정약용의 유배지
정약용의 유배지

어쩌면 유배지에서의 무변무활(無變無活)한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을지라도,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사색하고 산책하며 끼니를 위해 써야 하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온통 학문에만 전념한다는 것이 과연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일까? 도대체 학문이 무엇이기에? 단순히 앎에 대한 욕구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는 것만으로 복사뼈에 구멍이 나지는 않을 것이다.

다산 선생에게 학문이란 어쩌면 하루를 살도록 해주는 생존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오늘 하루 학문에 전념했으니 내일도 그럴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 20년이라는 유배지에서의 무변무활한 생활을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지.

이렇게 생각하니 학문이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편안한 삶을 살기 위한 수단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오히려 학문은 잡으려고 손을 뻗으면 저 만치 날아가 버리는 나비처럼, 이만큼 했으면 충분하다고 내외에서 인정하는 순간이 사실은 더욱 전념해야 할 때인 것이다.

인간사 어느 것이든 마찬가지겠지만, 학문 또한 끝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학문의 존재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학문의 과정 도처에서 생겨나는 의문들과 사고 과정상의 오류들, 한 인간이 평생을 살면서 해결할 수 없을 만큼의 질문들과 늘 곤궁한 답변, 과연 올바르게 추론하고 있는 것인지조차 모호할 때, 그 때가 바로 학문에 더욱 매진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다산 선생은 강진에 유배된 180111월부터 해배되어 고향으로 돌아간 18188월까지, 단 하루도 어기지 않고 오직 독서와 학문에만 전념함으로써 학문에 임하는 자의 태도는 이러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실천했다. 그만 되었다고 자부할 때 그 때가 학문의 참다운 시작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나는 나의 학문을 끝내 내 손에 쥐고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전념할 수 있을까? 황상이 다산 선생의 제자가 되기를 청하면서 제기했던 자신의 세 가지 단점, 둔할 둔()’막힐 체()’, 그리고 어긋날 알()’을 들어 과연 자신이 학문을 할 수 있을지 의심했듯이, 나 역시 극히 평범한 두뇌와, 끈질기지 못한 성정과, 정치(精緻)하지 못한 덤벙거림으로 늘 중도에 그치고 마는 나약함이 병통인데, 어떻게 학문에서 일가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황상은 자신의 단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고쳐준 다산 선생의 충고를 60여 년간 실천했다.

그러면 나의 병통도 학문을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내가 나의 단점을 잘 알고 있으니 어떤 경우에라도 황상처럼 세 번 부지런히(三勤)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이후의 내 삶과 학문에서 과골삼천을 더욱 분발하라는 자경구(自警句)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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