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추모하며...
친구를 추모하며...
  • 이수진 교수
  • 승인 2019.07.03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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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즈 이수진 교수]

ⓒ데일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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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유한한 삶을 산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많은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게 된다. 부모님이나 형제자매는 말 할 것도 없고, 배우자 또는 친구나 단순 지인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죽음들을 접하기 마련이다.

매일 여러 가지 원인으로 사람이 죽고 있지만, 그 사람이 나와 가까운 사람일 경우 그 죽음은 뒤에 살아남은 자가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커다란 상처로 남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난 31일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오랫동안 췌장암으로 고통 받다 영면의 상태로 들어갔다. 3개월 동안 마음속에 품어두었던 말을 이제야 풀어놓으며, 장례식 이후 나는 지금 친구의 부재(不在)를 다시 한 번 앞에 맞이하고 앉았다. 친구를 추모하며 나는 친구에 대한 기억을 붙들어 두고자 한다.

비록 언젠가는 내 죽음과 더불어 소실될 기억일지라도 친구보다 조금 더 사는 동안 친구의 얼굴과 음성을 잊고 싶지 않아서다.

고인과 나는 경복고등학교 동창이다. 3학년 때 같은 반에서 만났는데 그 시절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었는지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대학진학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아니었을까. 대학을 눈앞에 둔 고3 수험생이 낭만적이고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나누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을테니.

ⓒ데일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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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친구와 자주 만나 본격적으로 인생과 세상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던 때는 대학시절이었다. 친구는 대학에서 국사학을 전공했는데, 역사를 통해 세상을 바로 보는 힘을 키웠다. 그만큼 나와 술도 많이 마셨고, 열띤 토론도 자주 벌였다.

80년대 중반 엄혹했던 한국의 시국과 정치와 사회와 그 속에서의 올바른 삶에 대해 뜨겁고 혈기 넘치는 말들을 풀어놓으며 미래의 방향성을 모색하느라 고뇌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대학시절 이후에는 서로의 시간이 바쁘고 결혼과 직장 생활 등, 삶에서 다사다난한 일들을 겪으며 사느라 거의 만나지 못했다.

친구를 다시 만나 서로의 삶에서 가장 소중했던 시절을 추억하며 본래 거기 있었던 듯 자연스럽게 우정이 다시 시작된 것은 중년을 향해 가던 2015, 고등학교 동문 30주년 기념식에서였다. 그때 보았던 친구의 모습은 지금도 내 기억에 선연히 남아 있다.

온통 하얗게 새버린 흰머리를 휘날리며 환히 웃던 그 모습이. 그 흰머리는 동창회 바로 그날까지 친구가 삶에서 겪고 고뇌했던 결과물이었으리라.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몇 년 뒤 그 흰머리가 암으로 인해 하나도 남김없이 빠져버릴 줄은.

20182, 친구에게 갑자기 전화가 왔다. 동창회 이후로 거의 만나지 못했지만, 소식은 늘 궁금하던 차였다.

파주의 내 우거(寓居)까지 찾아온 친구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충격적인 모습으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차분히 풀어놓았다. 나는 친구의 담담한 목소리를 들으며 친구가 췌장암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뇌로 인해 얼마나 스산하고 하루하루가 위태로운 삶을 살았을지 내 체험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게 미래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비슷한 일을 먼저 겪은 나를 위로하던 친구의 온화한 눈빛과 따뜻한 두 손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비로소 나는 친구가 신원재로 이름을 바꾸었고, 교육관련 일을 오래 한 뒤에 지금은 데일리즈(http://www.dailies.kr)라는 인터넷 신문의 대표이자 편집국장으로 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국사학을 전공한 친구가 비로소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구나, 그렇게 정론(正論)을 위해 힘쓰고 있음을 알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나를 찾아온 이유도 내게 칼럼을 부탁하기 위해서 였고, 그 덕분에 나는 내 글을 데일리즈에 연재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데일리즈

이후 친구와 되도록 자주 통화했고, 문자도 교환했으며, 안산 자락길과 서오릉 등을 함께 걸으며 그동안 못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무수히 주고받았다. 특히 안산 자락길에서 친구는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도 살아남았는데 제 몸에서 생겨난 암세포에는 도무지 저항할 수가 없더라는 말을 수차례 했었다.

그 때 내가 느낀 슬픔은 친구가 어떻게 해서라도 살기만을 바라는 염원으로 대체되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자신의 필연적 죽음을 예상한 것으로 여겨진다. 건강한 사람은 아픈 사람 앞에서는 그저 죄인일 따름이다.

친구는 안산 자락길에서 세 아들과 막내딸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했다. 지금 모두 군복무 중인 세 아들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던지. 세 아들이 있어 세상을 떠날 때도 마음 든든했으리라. 장례식 때도 세 아들의 동기와 선후배들이 멋진 군복을 입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고인을 추모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친구가 세 아들을 잘 길렀구나, 하고 적이 안심했다.

다만 어린 막내딸 걱정에 다소 의기소침하던 친구였지만, 지금은 막내딸도 잘 적응하고 정신적으로도 잘 성장해서 살아가고 있으리라.

때로는 파주의 내 우거에서 같이 음악도 듣고 책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친구는 특히 영국 출신 여가수인 더스티 스프링필드(Dusty Springfield)의 노래들을 좋아했다. 내 우거에서는 주로 재즈를 같이 들었는데, 친구는 처음 접한 음악임에도 재즈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다면서 공부의 열망을 내비쳤다.

나는 몇 종의 재즈 음반을 권해주었는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빠짐없이 들어보았을 것이라 믿는다. 임종 시에는 어떤 음악 소리가 귀에 들렸을까?

친구는 독서도 즐겼고 시도 썼으며 데일리즈의 간판을 스스로 조각할 만큼 손재주도 뛰어났다. 그러나 재주 많은 사람은 하늘이 시기를 한다던가.

201810월에 지인과의 인터뷰를 주선하면서 친구와 만나 곧 항암치료에 들어갈 것이라는 일정을 포함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진 뒤, 3월에 부고를 받을 때까지 나는 친구가 무사히 항암치료를 마치고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나기를 얼마나 고대했던가. 다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중년의 우정을 이어가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재즈와 클래식 음악에 대해, 독서와 사색에 대해, 삶의 전반에 걸치는 무수히 많은 관심사들에 대해 대화할 수 있기를 얼마나 바라고 바랐던가.

이러한 나의 바람은 부고를 받기 전 친구와 2월에 주고받은 카카오톡에 오히려 정갈한 문장으로 남아 있다. 항암치료로 인한 엄청난 고통과 고뇌가 빚어낸 달관의 시각이랄까, 친구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새해 복도 필요치 않고 오로지 내 안의 평화를 갈구.”

사람은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뇌 앞에서도 쉽게 무너져 내리는 존재가 아님을 친구는 온몸으로 증명했다. 암이 그에게 가져다준 것이 더는 고통과 고뇌는 아니리라. 나는 친구가 하루를 살더라도 진정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열망을 두 다리에 싣고, 나날이 용기와 희망을 두 손에 단단히 쥐고서, 무너져 내리는 육신을 단순히 이어가고자 하는 욕심이 아니라 육체 저 너머에 있을 새로운 세상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갔을 것이라 믿는다.

이제 친구는 암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육체의 껍질을 벗고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했다. 비록 친구의 육체는 소멸했어도 정신은 남아 이후 데일리즈가 존속하는 동안 많은 이들에게 편달과 가르침으로 영원한 아우라를 발할 것이다.

친구는 불교도이니 지금도 극락에서 부처님과 거닐며 육체의 해탈과 정신의 열반을 만끽하고 있으리라. 친구를 먼저 보내고도 아직 뒤에 살아남은 나는, 앞으로도 친구를 깊이 추모하며 언젠가 찾아올 내 죽음과의 화해를 도모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이것이 조금 더 삶을 이어갈 뒤에 남은 자의 의무이자 도처의 죽음에서 배우는 진정한 희망이리라.

그래서 현대 그리스의 대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그랬듯이, “향연에 참석하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문턱을 넘어서는 왕처럼.”인간 카잔차키스, 엘레니 카잔차키스 지음, 안정효 옮김, 고려원, 1993, p.374), 나의 죽음도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

내 오랜 친구는 이미 이렇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고 이 곳의 삶을 뛰어 넘어 저 곳에 존재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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