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冠岳山)둘레길은 보물길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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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冠岳山)둘레길은 보물길 ②
  • 寒井 박춘식 자유기고가
  • 승인 2019.06.14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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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즈 寒井 박춘식 자유기고가]

걷고 보고 노닐며 즐기네.....

서울근교 산행의 만남의 장소인 구파발역, 우이동종점, 도봉산역, 수락산역, 사당역 등은 언제나 등산객들로 바글바글 합니다.

등산은 40대 이상 남녀들에겐 최고의 레져 스포츠라고 하는데 정말 주말엔 배낭을 멘 화려한 등산복에 멋진 썬그라스를 걸친 청춘 남녀들이 가득합니다.

바로 전날 금요일까지만 해도 업무에 지쳐 쓰러질 것만 같았던 사람들의 얼굴은 어디가고 토요일 아침 이 곳 사람들의 얼굴엔 웃음과 활기가 넘치며 함께 있는 공간까지 기(氣)가 충만한 곳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왜 이렇게 활기가 넘칠까요?
어떤 이는 이런 말을 합니다.
"비싼 밥 먹고 뭐 할라고 산에 가서 땀 흘리냐?"
간혹 듣게 되는 말인데, 참 어이가 없습니다.

땀 흘리며 스포츠을 즐기는 사람이나,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이 고생하려 하기 때문일까요?
여기에 딱 맞는 말이  '유희의 인간'입니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
가끔 어릴적 딱지치기 하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밥 먹는 것도 잊을 정도로 참으로 열정적으로 딱지치기를 했죠.

노동이 신성한 것만큼이나 휴식도 중요하며, 자고 쉬는 휴식만큼이나 자발적인 창조 활동이나 스포츠 활동에서의 땀 흘리는 유희도 숭고합니다. 공부가 중요한 것만큼 딱지 접는 것 중요하며, 자고 쉬는 휴식만큼이나 딱지치기도 숭고..... ^^.

 

60년대관악산 한강이 가까이 보인다
60년대 관악산 한강이 가까이 보인다

우리 선조들이 산을 즐기는 방식 즉, 산에 대한 유희는 관산(觀山), 유산(遊山), 요산(樂山)이었습니다.

경치를 바라보고(觀), 자연과 노닐며(遊), 즐기며 좋아한다(樂)는 뜻이니 오르고 정복한다는 뜻의  등산(登山 ), 등정(登頂)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한 평생 산과 더불어 살아왔습니다.
조선시대 평민들은 주로 목재와 땜감을 얻고 버섯이나 산나물을 뜯거나 열매를 얻고자 산에 올랐습니다.

신앙적인 면에서는 산기슭에 성황당을 만들고 영험한 바위나 나무에 제를 올렸으며 사찰에 가서는 미륵불과 관세음보살의 구원과 자비를 구하였습니다.

반면 양반들은 평생 책과 함께 하였고 때론 경치 좋은 곳에 정자를 만들어 공자왈 맹자왈 하며 글을 읽었습니다. 때론 차 한잔, 술 한잔에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으며 시원한 계곡에 가선 탁족을 하다가 멋진 바위라도 있으면 글씨를 새겨두곤 하였습니다.

또한 사람이 죽으면 산에다 묻게 되는데 우리의 매장 풍습은 다양한 변화를 거치면서 풍수지리와 유교문화가 어우러진 독특한 문화양식으로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한편 나라에서는 외적의 침입을 대비하고자 산성을 쌓거나 봉수대를 만들었으며 평상시에 스님들로 하여금 성을 보수하고 관리하도록 하니 산성 부근엔 많은 사찰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산에는 선조들의 삶을 통한 다양한 우리 고유문화들이 녹아 전해 오고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유산기(遊山記), 요즘 말로하면 등산기행문도 많이 남기셨습니다.

남효온의 '유금강산기', 김창흡의 '오대산기행', 조식의 '유두류록(遊頭流錄)', 이시선의 '유가야산기', 이황의 '소백산유람록', 정약용의 '수종사유람기' 등 남겨진 유산기가 무려 560여 편에 이르며, 관악산에 대한 기행으론 성간의 '유북암기', 채제공의 '관악산유람기', 이익의 '유관악산기', 최석정의 '이로당기', 서영보의 '유자하동기' 등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국토의 1/3이 산이기에 산과 더불어 살아온 선조들의 모습을 산림에서 찾아보며 산수(山水)가 좋은 곳에서 풍류를 즐기던 선비들의 유희를 쫓아 산길을 걸으니, 그야말로 오늘 나는 낙지자(樂之者)입니다.

 

채제공의 유관악산기
채제공의 유관악산기

 

첫 번째 길
(사당역 – 남현동요지 - 이경직 묘 – 동굴군락지 - 관음사 - 전망대 바위 - 홈플러스 - 방배동 전원마을 - 남태령 - 남태령옛길 - 성황신목 – 용마골 – 도당터 - 최몽량묘역 - 과천관아터(온온사): 천천히 5~6시간)

저는 길을 천천히 걷습니다. 걸음은 늦지 않으나 관산(觀山)을 하니 속도가 나질 않습니다.
관악산둘레길을 3일 만에 완주하는 하는 분도 있지만, 저는 6일 동안 돌아봐도 벅찹니다.

산행시간은 식사나 간식시간을 포함해서 5~6시간이 좋습니다. 이리저리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걸으니 잘해야 하루 6km 걷습니다. 매일매일 이렇게 걷는다면 그래도 운동이 되겠으나, 주말에 한번씩 걷는 정도니, 살도 별로 안빠지고 운동이 되질 않습니다. 오히려 밥 맛만 좋아집니다.

둘레길의 첫 시작을 사당역에서 시작해 봅니다.
물통, 보온물통, 배낭만 챙겨 집을 나선 후, 편의점에 들러 다소간의 채비를 갖춰봅니다.
컵라면, 영양갱 등을 골라 계산한 후 집에서 가져나온 보온물통엔 뜨거운 물도 가득 담아 나옵니다. (컵라면과 커피 마실 물을 저는 요렇게 챙깁니다. 이럴때 정말 편의점이 좋습니다. ^^ ). 생수는 관음사 약수물을 받을 생각입니다.

 

부끄러운 사적지 남현동요지
부끄러운 사적지 남현동요지

3분만에 시작되는 관악산행 [서울 남현동요지]....
사당역 6번 출구쪽은 행정구역상 관악구 남현동(南峴洞)으로써 관악산 등산객들의 만남의 장소입니다.

남현동에는 사당초등학교가 있는데 이를 볼 때 "아! 이 곳이 한때는 사당동 이었구나."라고 쉽게 유추가 될 것입니다.

그럼 남현동은 뭘까요? 이 곳에서 남쪽으로 과천으로 넘어가는 큰 고개(남태령)가 있기에 남현(南:남녁 남, 峴:고개 현)동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사당역 6번 출구나 5번 출구에서 도보로 3분 거리인 남서쪽 250쯤의 주택가에 텃밭이 있는 야트막한 산이 나타납니다. 전에는 <사당동백제요지>라고 하였으나 2011년부터 <서울 남현동요지>로 불리고 있으며 네이버 지도상에 <백제요지>라고 표기되어 있는 오늘의 첫 탐방지입니다.

<서울 남현동요지>라는 안내판 뒤쪽의 사적지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합니다. 과연 여기가 사적지란 말인가?

관악산 둘레에는 현재 10여 군데의 요지, 즉 가마터가 발견되었습니다. 대개가 품질이 떨어지는 조선시대 백성들의 민요(民窯) 가마터입니다만, 청자· 백자· 분청사기· 철화백자 등 다양한 파편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곳의 모습처럼 관리는 전혀 안되고 있으며 그나마 안내판이 없다면 여기가 가마터였다는 것을 전혀 알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남현동요지는 1973년 발견 당시 서울, 경기권의 유일한 백제시대 요지로 주목받았으며, 위쪽 사당초등학교 쪽에서는 신라시대 요지가 발견되면서 사적 제247호로 지정되었던 곳입니다.

그럼 정말 옛 백제인들은 맑은 물, 참나무, 질흙의 3박자가 풍부했던 이 곳에서 가마를 만들어 질그릇을 구었던 것일까요?

2006년10월 서울대박물관 팀의 재발굴조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백제와는 관련이 없는 통일신라후기의 폐기장 유구라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다시 말해 사당초등학교 쪽의 신라가마터에서 버려진 그릇 조각들의 폐기장이라는 말이겠죠?

1000년전 유적지라 오락가락 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그렇지 유일한 백제가마터라 하더니 폐기장이라니... 이 지역 사람들 기분 팍 상했겠는데요? 문화재청에서는 아직 이 곳을 사적지로 보호하고 있으나, 또 다른 과제로 남겨두며 백제요지가 아니라 남현동요지로 바꿔 부르게 된 사연입니다.

저는 이렇게 된 이유가 우리들의 관리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적지 주변에서 불법 텃밭농사 하시는 분들, 제발 이제 그만두셨으면 합니다.

30년 전에는 있었던 백제요지의 흔적이 이로 인해 손상되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첫 탐방지의 씁쓸한 모습을 뒤로하고 남현동요지의 우측 시멘트계단으로 해서 텃밭사이로 산에 오릅니다 벌써 관악산인가?

남현동요지 아래는 예나 지금이나 남태령을 오고가던 나그네들의 주막거리입니다. 한 때는 승려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던 승방평으로 승방뜰 또는 심방뜰이라고 불렸습니다.

조선시대에 한양 도성 안에는 스님들이 머물지 못하도록 규제하였으니 삼남지역(충청, 전라, 경상)을 오고가던 스님들은 승방평에서 잠시 쉬었다가 먼 곳으로 떠나지 않았을까 그려봅니다.
현재도 관음사에 이르는 길목의 도로 이름은 승방길이라 부르며 옛 지명을 따르고 있으나, 이제는 스님들 대신에 등반객들로 가득한 거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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