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칸디나비아반도 사람들의 지혜...바이킹 사가(Saga : 전설, 무용담)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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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칸디나비아반도 사람들의 지혜...바이킹 사가(Saga : 전설, 무용담)를 들어보자
  • 김기수 교수
  • 승인 2019.01.31 1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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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즈 김기수 교수]

매년 1월 마지막 주 화요일에는 스코틀랜드 북쪽에 위치한 셰틀랜드 섬(Shetland)에서 유럽 최대 규모의 불 축제(fire festival)가 열린다고 한다. 바이킹 복장의 사람들이 거리행진도 하고, 저녁에는 바이킹 배 모형을 태우면서 노래하고 춤추는 축제란다.

이 축제는 동지를 전후해 밤이 가장 길었던 시기가 지나고 다시 찾아오는 태양과 낮을 기쁘게 즐겼던 시즌(지난번 스웨덴의 루시아 축일에서 언급한 ‘율-Jule’ 시즌)을 마무리하는 한편, 대략 600년에 걸쳐 이 섬을 지배했던 바이킹을 기념하기 위해 19세기 후반 시작되었다고 한다.

바이킹(Viking)은 오늘날 스웨덴을 비롯해 노르웨이와 덴마크에 해당하는 스칸디나비아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 특히 항해와 약탈(해적질)에 나섰던 사람들을 통칭해 부르는 말이다. 스칸디나비아 고어에서는 ‘vik’가 ‘해적(질을 하다)’이나 ‘항해’를 의미하거나 ‘육지로 둘러싸인 해안가나 강가’를 의미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는 대략 8세기 후반부터 1060년대 까지를 바이킹 시대라고 하고, 우리가 바이킹이라 부르는 사람이나 집단의 이야기는 거의 이 시대에 관한 것이다.

바이킹의 유산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스코틀랜드 북쪽 셰틀랜드 섬에서 해마다 1월 마지막 주 화요일에 열리는 ‘업 헬리 아(Up Helly Aa)’ 축제는 모형 바이킹 배를 불태우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출처 : https://ichef.bbci.co.uk/news(BBC 2019년 1월 29일)
바이킹의 유산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스코틀랜드 북쪽 셰틀랜드 섬에서 해마다 1월 마지막 주 화요일에 열리는 ‘업 헬리 아(Up Helly Aa)’ 축제는 모형 바이킹 배를 불태우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출처 : https://ichef.bbci.co.uk/news(BBC 2019년 1월 29일)

바이킹은 보통 해적질과 약탈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으나, 한편으로는 대개 농부이자 어부로 교역이나 탐험, 새로운 땅 개척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 사람들이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두드러지지 않고 조용히 지내던 북쪽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은 8세기 후반에 이르러 늘어난 인구를 부양할 만큼 풍족하지 않은 농지, 급격한 기후악화, 빈번한 내란, 장자상속에 따른 차남 이하 남성들의 누적된 불만과 부에 대한 열망 등으로 외부세계로 눈을 돌리게 된다.

여기에 더해 바다에 익숙한 환경으로 일찍이 항해술과 조선술에 능숙했기에 당대 유럽인들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기동력으로 유럽 전역에 출몰할 수 있었다. 초기에는 해안가를 급습하여 순식간에 금품이나 노예를 포획하고 사라지곤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는 새로운 정착지를 건설하고 일상적인 공동체를 꾸려 주변 원주민들과 섞여 살아갔다.

약 300여 년에 걸쳐 바이킹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유럽 서남부는 물론 멀리 비잔틴 제국과 중동 지역, 오늘날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일대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급기야 1000년경에는 비록 500년 후의 콜럼버스처럼 국가(왕)의 지원을 받은 것도 아니었고 단명하기는 했으나 북아메리카에 소규모 정착지를 건설하기도 했다. 그렇게 바이킹은 때로는 약탈자로, 때로는 상인이자 모험가로, 때로는 지배자로 매우 강력한 인상을 남겼던 것이다.

그러나 바이킹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해두지 않아 바이킹에 관한 대부분의 자료는 외부의 시선에서 기록된 것이 많다. 이런 이유로 오랫동안 바이킹은 포악무도한 약탈자이자 광포한 전사로서 매우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19세기에 민족주의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바이킹에 ‘고귀한 야만인’의 이미지가 덧붙여지기도 하고, 고고학적 성과를 통해 다양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시작하였다.

바이킹의 본향이라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는 물론이고 앞서 언급한 스코틀랜드나 그 시절 바이킹의 영향을 받았던 많은 나라에서 바이킹과 관련된 많은 행사가 열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하겠다.

바이킹들의 주된 활동경로. 오늘날 기준으로 노르웨이계 바이킹들은 주로 대서양 쪽으로 진출해 영국 북쪽과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북미 대륙 등에 흔적을 많이 남겼다. 덴마크계 바이킹들은 영국 남쪽, 프랑스 서북부, 이탈리아 남부 등으로 진출하였으며,  스웨덴계 바이킹들은 동쪽의 러시아, 우크라이나, 남쪽의 비잔틴 제국에 영향을 미쳤다. 바이킹 활동 초기에는 세 나라간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가 바이킹 시대를 통해 점차 국가의 틀을 갖추게 된다. ⓒ출처 : https://upload.wikimedia.org(위키피디아)
바이킹들의 주된 활동경로. 오늘날 기준으로 노르웨이계 바이킹들은 주로 대서양 쪽으로 진출해 영국 북쪽과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북미 대륙 등에 흔적을 많이 남겼다. 덴마크계 바이킹들은 영국 남쪽, 프랑스 서북부, 이탈리아 남부 등으로 진출하였으며, 스웨덴계 바이킹들은 동쪽의 러시아, 우크라이나, 남쪽의 비잔틴 제국에 영향을 미쳤다. 바이킹 활동 초기에는 세 나라간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가 바이킹 시대를 통해 점차 국가의 틀을 갖추게 된다. ⓒ출처 : https://upload.wikimedia.org(위키피디아)

한편에서는 험난한 제반 여건을 극복하고 미지의 세계를 새롭게 조망하고 구축한 바이킹의 유산에서 스웨덴을 비롯한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이 현재 세계적 수준으로 구축한 사회안전망과 질서의 밑거름을 엿보기도 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바이킹의 대중적 소비가 최근 난민문제나 이와 연관된 인종주의, 극우민족주의 등과 관련해 부정적으로 결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폭력적이고 배타적이었던 이미지를 벗고 점차 주변인들과 소통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조화를 이루었던 조상 바이킹들의 지혜가 발휘되길 기대해 본다.

필자 : 김기수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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