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벽돌집 ’딜쿠샤’의 비밀…그 안으로 미리 들어갔다 나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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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벽돌집 ’딜쿠샤’의 비밀…그 안으로 미리 들어갔다 나오다
  • 신상인 기자
  • 승인 2019.01.31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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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ㆍ1운동 / 임시정부 100주년]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 ‘딜쿠샤와 호박목걸이’(오는 3월 10일까지)

[데일리즈 신상인 기자]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전시장 입구 ⓒ데일리즈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전시장 입구 ⓒ데일리즈

최근 목포의 근대건물로 신문이 난리가 나고 있다. 조선시대 한옥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근대 건물들도 많다. 서울 종로구 행촌동 ‘딜쿠샤(Dilkusha)’란 건물이다.

딜쿠샤는 잠시 두고, 서울시는 배렴 가옥(등록문화재 제85호)과 홍건익 가옥(서울시 민속문화재 제33호) 등을 관리가 가능한 문화재로 등록하고 있다.

한국화가 제당(霽堂) 배렴(裵濂)과 민속학자 송석하가 살던 배렴 가옥이라 불리는 한옥은 역사인물가옥의 특성을 살린 전시와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석조우물과 일각문이 잘 보존된 근대한옥 홍건익 가옥은 경복궁 서측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고, 시민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한옥이다.

그런 한옥이 종로구 체부동에도 있다. 홍종문 가옥이다. 한옥 말고도 근대 건물이 있다. 그게 바로 딜쿠샤다. 이 곳은 본래 행주대첩에서 큰 공을 세웠던 권율 장군의 집터로, 현재까지 건물 앞에는 당시부터 있던 수령 400년 이상 된 은행나무가 있으며, 해당 건물이 축조되기 전에는 마을 사람들의 성황당 및 공동 우물터로 쓰였다고 한다.

‘딜쿠샤’와 메리 테일러의 ‘호박목걸이’ ⓒ데일리즈
‘딜쿠샤’와 메리 테일러의 ‘호박목걸이’ ⓒ데일리즈

이 집을 짓고 살던 사람은 파란 눈의 외국인이다. 이 미국인은 해외로 3ㆍ1운동을 처음 알린 UPI 통신사 특파원이었다. 최근 앨버트 테일러 부부가 1923년 건축한 저택이 딜쿠샤와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 집의 이름인 딜쿠샤는 외국인이 염원하는 한국 독립을 담은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 ‘이상향’, ‘희망의 궁전’ 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는데, 이것은 메리 테일러가 인도 북부 러크나우를 여행할 당시 관심 깊게 본 궁전의 이름이라고 전한다.

앨버트 테일러는 3ㆍ1운동 직전인 1917년부터 일제에 강제추방 당한 1942년 때까지 25년간 이곳에서 살면서 항일독립운동을 도왔다. 테일러는 강제출국 당하고서도 1919년 3ㆍ1운동과 4월 15일 수원 제암리 학살사건을 취재해 처음으로 세계에 알렸다.

김동준 서울역사박물관 주무관에 따르면 “(테일러가) 취재한 자료를 가지고 당시 조선총독부 하세가와에게 가져가서 제암리에 대해 잔악 행위를 금지하고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냈으며 이에 대해 유감 표명을 받아낸 사실이 호박목걸이(메리 테일러의 자서전)의 내용에 담겨있다”고 말했다.

테일러 일가의 가계도 ⓒ데일리즈
테일러 일가의 가계도 ⓒ데일리즈 

앨버트 테일러는 1948년 심장마비로 미국에서 숨을 거뒀지만 “조선 땅에 묻어 달라”는 유언에 따라 양화진 외국인 묘역에 안치됐다. 당시 아내 메리 테일러는 1948년 남편의 유해와 함께 인천으로 입국했으나 측근이었던 김 주사, 곤도, 아들 윌리엄 김의 사망소식을 듣게 됐고 일정이 짧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테일러 일가가 추방된 뒤 이 주택은 오랫동안 조경규 자유당 의원이 소유했다. 1963년 그는 부정축재자로 지목되어 재산을 몰수당했는데 이 때 딜쿠샤도 대한민국 정부에 몰수됐으며 이후 방치되면서 일반인들이 무단 점유, 거주하는 집으로 전락했다.

지하 1층, 지상 2층 총면적 624㎡의 딜쿠샤는 우리나라 독립운동과 문화재로 가치가 있는 건축물이지만 그간 20여 가구가 이리저리 고쳐가며 사는 삶의 터전 '은행나무집'으로 기억되고 잊혀질 뻔했다.

이 딜쿠샤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2005년 미국인 브루스 테일러의 의뢰로 자신이 어릴 적 살던 집을 찾는 일에 나서면서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연립주택 사이에 있는 딜쿠샤가 확인됐다.

브루스 테일러의 의뢰를 받은 김익상 서일대  교수에 의해 처음 확인된 것. 결국 2006년 브루스 테일러는 딜쿠샤를 떠나온지 66년만에 자신이 태어난 집을 찾았고, 이로서 은행나무골 붉은 벽돌집 딜쿠샤에 숨겨져 있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후  부루스 테일러도 타계하고 그의 딸 제니퍼 테일러(엘버트-메리 테일러 손녀)가 2016년 3월 다시 딜쿠샤를 방문, 2018년 2월까지 딜쿠샤 관련 자료 1050여 건을 기증했다.

테일러가와 관계를 맺던 조선 사람들. 메리 테일러의 ‘호박목걸이’에 설명돼 있다. ⓒ데일리즈
테일러가와 관계를 맺던 조선 사람들. 메리 테일러의 ‘호박목걸이’에 설명돼 있다. ⓒ데일리즈

이들 중에는 일제 강점기에 촬영된 딜쿠샤 내부 사진이 있어 딜쿠샤를 복원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역사박물관의 기증유물 특별전 ‘딜쿠샤와 호박목거리 전이 열리게 됐다. 지난해 11월 23일부터 오는 3월 10일 까지 진행되며, 테일러 부부가 남긴 유물에 이어 문화재로 지정된 딜쿠샤도 복원이 끝나는 대로 일반에 공개된다.

특히 메리 테일러가 쓴 테일러 부부의 서울살이를 기록한 자서전인 ‘호박목걸이’의 모든 내용은 당시 조선의 생활모습, 민속신앙 등 조선에 살며 겪었던 경험들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호박목걸이는 부인이었던 메리가 엘버트에게서 결혼기념일 선물로 받은 목걸이다.

또 이번 전시회에는 3ㆍ1운동을 비롯한 항일투쟁 기사와 당시 민족 지도자 재판 과정, 당시 경성의 모습을 담은 다양한 자료들이 눈길을 끈다. 당시 희귀한 고종의 국장 행렬도 여러 장의 사진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전시회에서는 이방인의 눈에 비친 조선의 모습이 이채롭다. 딜쿠샤의 사람들에 대한 그림, 당시 외국인의 생활상, 살림도구도 아기자기 전시해 놓았다.

앨버트 테일러가 찍은 고종의 국장 행렬 사진 ⓒ데일리즈
앨버트 테일러가 찍은 고종의 국장 행렬 사진 ⓒ데일리즈

제니퍼 테일러의 기증으로 딜쿠샤 복원에 맞춰 관련 유물이 먼저 시민들을 만날 수 있다. 서울특별시와 기획재정부, 문화재청, 종로구는 2016년 2월 26일 딜쿠샤의 보존, 관리 및 활용을 위한 양해 각서를 체결했다.

이에 따르면 2019년까지 정부와 서울시의 공동 부담으로 딜쿠샤를 원형으로 복원하고, 문화재로도 지정해 3ㆍ1 운동 100주년이 되는 2019년 민간에 개방한다는 것이다.

1950년대 이후 민간인에 의해 방치되다시피 딜쿠샤, 옛집 문화재 지정 및 언론사적 공원 조성지로 추진하던중 ‘딜쿠샤 1923’이라는 정초석이 무엇인지 밝히지 못해 중단됐었지만 조만간 딜쿠샤에서 이 유물들이 다시 자리를 찾아간 후 관람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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