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人物 다시 보기③ ] 율곡 이이, 청렴결백 실천한 만대의 스승...현대의 기준은?
[시대의 人物 다시 보기③ ] 율곡 이이, 청렴결백 실천한 만대의 스승...현대의 기준은?
  • 이수진 교수
  • 승인 2019.01.11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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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즈 이수진 교수] 

우리 역사에도 청렴하고 결백했던 인물은 많이 있었다. 지금은 그 찬연한 전통과 정신적 명맥이 끊어져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정치판이지만, 단순히 충신이라는 명칭을 뛰어넘어 인간으로서도 완벽한 경지에 도달했던 인물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공경해 마지않는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 선생이다.

언젠가의 일기에다 제갈량의 임종 시「유표」(遺表)에 나온 문장을 읽고서 그의 청렴과 결백함에 대해 쓴 적도 있지만, 율곡 선생도 그에 못지않다. 아니, 제갈량보다 오히려 더욱 앞서 나가 청렴과 결백에 관한 한 한국역사 최고의 인물이라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율곡 선생이 임종했을 때 그의 집에는 저축해놓은 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 시신에 입힐 수의조차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친구의 것을 빌려 겨우 장례식을 치렀고, 유족들이 살 집 한 칸 조차 없어 친구들과 제자들이 돈을 모아 살 집을 변통해주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인터넷커뮤니티
율곡(栗谷) 이이 ⓒ인터넷커뮤니티

일국의 대신(大臣)이자 명문장가, 애민정신 강한 관리이자 효심 가득한 아들이었던 선생의 마지막 모습이 너무도 비참하고 초라하게 생각되는가? 만약 율곡 선생의 마지막 삶이 생전의 명성에 걸맞지 않는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결단코 그는 권력과 물질적 부에 경도되어 정신적인 선(善)과 도덕성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물론 도덕성은 더 이상 지킬 가치조차 없는 옛 유물로 전락한지 오래지만, 세태가 그럴수록 율곡 선생이 자신의 권력과 물질적 부를 하찮게 여기고 사후의 명성에 집착하지 않았다는 사실(史實)이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판에 뛰어드는 사람치고 권력을 통한 부의 축적에 골몰하지 않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조그만 권력이라도 쥐고 있을 때 어떻게든 그것을 행사하여 최대한의 이익을 챙기고 개인의 영달을 위해 철저하게 이용할 것이다. 따라서 멀게는 탐관오리(貪官汚吏)들의 철저한 백성 수탈과 가까이는 친일파들의 매국행위로 인한 질곡(桎梏)의 세월까지, 지금의 정치 불신과 정치 모리배(謀利輩)에 대한 분노는 그 뿌리가 매우 깊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세태가 이런데도 율곡 선생의 청렴한 생활과 결백한 정신이 왜 아무런 반향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도덕성을 폄하하고 청렴함을 비웃는 세태여서 그런 것일까? 어느 분야에 있는 누구든 작은 권력이라도 쥐고 있는 사람이라면 힘없는 타인을 짓밟고 그들의 것을 강탈해서라도 무조건 내 것을 늘리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용인되고 있는 부조리한 시공간에서, 율곡 선생의 자발적인 가난과 높은 청렴함이 오히려 비웃음을 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현 한국 사회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왜 한국에서 정치인이면 어느 누구라도 임기가 끝나고 난 뒤엔 재산이 수십, 수백억 원 씩 늘어나 있는가? 왜 한국에서 대기업 관계자라면 재산의 해외 도피와 비자금 은닉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는가? 왜 한국에서 고위 공직자라면 뇌물수수와 아파트 및 땅 투기 의혹에서 예외가 없는가?

나는 지금 현대 사회의 전반적 가치가 물질적 부의 숭배에 집중되어 있고, 사람들도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인생의 목표로 삼아 열심히 노력하는 것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추구하는 방법과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물질적 부는 마땅히 선량한 타인에게 돌아가야 했을 정당한 몫이었는지도 모른다. 내 것은 타인의 것을 빼앗지 않고는 절대 늘어나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권력에 집착하는 것인지도...

누군들 가난하고 궁핍하게 살고 싶겠는가? 어쩌면 율곡 선생도 한번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부를 축적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삿된 생각을 물리치고 오직 백성과 사직(社稷), 그리고 국가의 안위만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길을 택해 실천했듯, 자발적인 가난도 도덕적 선택이 될 수 있고 권력 또한 하찮은 허명(虛名)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가족에게 한 칸 집도 마련해주지 못한 아버지이자 남편인 율곡 선생은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 살아 있을 때도 청렴하고 결백하게 사느라 풍족하지 못한 생활이었을 텐 데 죽어서도 가족들을 거리에 나 앉게 했다면, 율곡 선생은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시대의 정신적 분위기가 자발적 가난을 높은 정신성의 증표로 여기고 민중도 그러한 생활 태도를 기꺼이 존중하는 사회라면 임종 시에 아무 재산도 남기지 않는 것은 칭송 받아 마땅한 일일 것이다. 집이란 살아 있는 동안에 제 몸 누이고 비바람 피할 수 있으면 그 뿐, 권력을 휘둘러 99칸 큰 집을 소유한들 그 곳에서 매일의 성찰은커녕 책 한 권 읽지 않고 오로지 돈 세는 재미로 산다면 비록 낡은 초가에서 궁핍하게 살지언정 며칠 굶었어도 낭랑한 목소리로 글 읽는 선비의 생활이 더욱 빛나지 않을까?

청장관 이덕무 선생이 그랬고, 화담 서경덕 선생이 그렇게 살았다. 그들은 비록 99칸 대궐 같은 집에서 살지도 못했고 굶기를 밥 먹듯 했어도 지금까지 이름을 드높이고 있고 그들이 남긴 문장은 나날의 정신적 양식이 된지 오래이며, 청렴결백했던 일화들은 일생을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인간이라는 이름에 걸 맞는 것인지를 말없이 웅변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이기성이 극에 달한 지금 이들의 삶의 태도가 어떻게 비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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