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 인생은 여행이다 ②] 인간의 섬을 건너 생명의 섬으로 가고 싶은 이유
[이수진, 인생은 여행이다 ②] 인간의 섬을 건너 생명의 섬으로 가고 싶은 이유
  • 이수진 교수
  • 승인 2019.01.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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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즈 이수진 교수] 

섬에 가고 싶다.

장 그르니에의 산문집 『섬』(민음사, 1993)에 나오는 방랑자가 삶의 회한을 딛고 유한성을 깨달아가는 과정처럼, 정 현종 시인이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라고 노래했을 때 참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랐듯이, 수많은 예술가들이 지중해의 섬들에 매혹당해 거기서 일생을 마쳤듯이, 나도 그런 섬에 가서 뿌리를 내리고 싶다.

『섬』, 장 그르니에, 1993 ⓒ민음사
『섬』, 장 그르니에, 1993 ⓒ민음사

물론 섬에도 사람이 살고 있는 그 만큼 욕망과 다툼과 질투가 있겠지만 도시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섬이야말로 진정 인간이 깨끗해질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라는 의미에서의 회귀 말이다.
 
왜 하필 섬이냐고 묻지 말라. 섬은,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으면서 쪽빛으로 사람의 마음을 씻어주고, 맑은 공기로 빈 가슴을 채워주어 온 몸 가득 시원(始原)의 냄새를 풍기게 하질 않던가? 갈매기들이 날다가 지치면 내려서 기운을 얻고 가는 무인도, 몇 가구 되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자연의 미덕에 순종하며 인간으로서의 참모습을 지켜가는 섬, 섬, 섬... 이만하면 섬을 찾아야 할 당위성은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우리들 각자는 속세라는 넓은 바다 위에서 끊임없이 정착할 섬을 찾아 방황하는 오디세우스라고 할 수 있다. 단 오디세우스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온갖 고난을 다 겪으며 점점 더 심원한 진리에 도달하지만, 우리들은 하루하루의 생존 싸움에서 겨우 살아남아 가물거리는 불빛에서 작은 위안을 얻는 가짜 오디세우스라 해도.

하지만 꼭 깨달아야 맛이냐! 정신이 깊어져서 무얼 어쩌겠다고? 깊어진 것을 무엇으로 어떻게 증명하겠다고?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도의(道義)를 지키면서 살기가 어려운 세상, 혼탁해질 대로 혼탁해진 사바세계(娑婆世界)를 아주 떠날 수는 없기 때문에 더욱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섬에 가고 싶은 것이다.

바다 한 가운데에서 속세의 욕망은 파란 죽음으로서만 씻을 수 있으니. 배에 몸을 싣고 바다를 건넌다. 바다는 크고 배는 작다. 작은 배가 큰 바다를 가르며 달린다. 갈매기가 난다. 바람이 거세다. 얼굴을 스치고 가슴을 파고들어 찌꺼기를 몰아낸다.

저기 섬이 보인다. 작은 섬이다, 큰 바다 위에 살짝 얼굴을 내민 작은 섬이다. 배가 뭍에 닿는다. 짐을 챙겨 들고 양말을 벗는다. 신발은 손에 들고 살며시 발끝을 물에 담가 본다. 발이 물에 닿는다. 차갑다. 가슴 속 깊이 구겨져 있던 순수가 눈을 뜬다. 그 때 배가 머리를 돌려 왔던 길로 떠난다. 멀어지는 배를 바라보며 발길을 돌린다. 세상을 살면서 가장 맑아질 수 있는 때가 있다면 바로 이 순간이 아닐까?

아직 어느 섬으로 가야할지 정하지 못했다. 우리 국토의 사방에 편재하는 수 천 개의 섬들 가운데서 어느 섬이 나를 반겨줄까? 더러운 도시 놈 왔다고 쫓아내지는 않을까? 발을 담그기가 무섭게 물이 더러워지지는 않을까? 아니, 설사 더러워진다 해도 나는 달라지고 싶다. 관대해지고 싶다. 넓어진 가슴으로 만물을 껴안고 싶다. 나는 그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전 산에 오르다가 하늘소 종류의 한 마리 곤충을 살려주었고, 길을 걸을 때 마다 개미 한 마리라도 밟지 않으려 조심하곤 하니까. 그럴 때의 내 모습은 마치 자이나교(敎)의 수도승처럼 보이리라. 이름이 알려진 섬으로 갈까, 아니면 덜 알려졌어도 그만큼 깨끗한 섬으로 갈까? 어느 곳으로 가든 나를 거부하는 섬은 없으리라. 내 마음이 거부하는 것일 뿐.

섬은 왜 거기에 있을까? 지질학적으로 설명하려 하지 말라. 지구상 만물은 거저 생겨나지 않았으니.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섬에도 꽃은 피고 곤충이 날아든다. 갈매기가 날다가 지치면 내려 쉬다 간다. 이들이 어떻게? 섬이 생명을 길러내기 때문이다. 섬의 흙과 바다의 바람이 생명을 빚어내기 때문이다. 생명이 생명을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섬을 그리워한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갈 수 없는 섬은 현실에서도 갈 수 없다. 그저 저마다 가슴 속에 이상의 섬을 하나씩 품고 하루하루를 견디어내는 것이다. 언젠가는 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서.

섬으로 가리라. 많은 생명을 앗아간 바다를 가르고 솟아오른 섬으로 가리라. 섬에서 내 생명을 던지리라. 섬에서 뿌리를 내리리라. 과연 그럴 수 있을까? 50년이 넘게 도시에서 살아온 내가 사람의 숲을 떠나 섭리(攝理)의 숲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인간임을 잊고 동물처럼, 식물처럼, 곤충처럼, 아니, 만물의 한 분자로서 자유롭게, 가볍게, 배고프게 살 수 있을까?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사는 개미처럼, 바람과 태양빛, 조금의 물만으로도 만족하며 살아가는 꽃들처럼,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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