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과 사랑, 또는 슬픔을 달래기 위한 '술'...스웨덴 사회를 비치는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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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과 사랑, 또는 슬픔을 달래기 위한 '술'...스웨덴 사회를 비치는 거울
  • 김기수 교수
  • 승인 2018.12.18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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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즈 김기수 교수] 

지난 11월 말 스코틀랜드 의료진이 날씨 및 위도에 따른 음주습관에 대한 연구결과를 공표하였는데, 요지는 고위도의 추운 지방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도수의 술을 즐기고 습관적인 음주도 잦다는 것이었다.

이를 두고 현장에서는 물론 나중에도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결과라며 다소간의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주된 비판의 하나는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같은 나라도 고위도에 위치한 추운 나라지만 술 소비량은 물론 습관적 음주도 평균수치에 미달한다는 것이었다.

세계 술 소비에 관한 몇 가지 통계를 보면 스웨덴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술을 덜 마시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선호하는 술 종류는 불문에 부치기로 하고 보자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3년 자료에 의하면 스웨덴은 OECD 34개 회원국 중 15세 이상 인구의 연간 알코올 소비가 28위로(1인당 7.3리터) 가장 낮은 축에 속했다. 2015년 세계보건기구(WHO)가 OECD 국가를 대상으로 집계한 통계에서도 스웨덴은 1인당 연간 8.7리터를 소비해 25위를 기록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각각 22위와 14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스웨덴이 오늘날처럼 술을 덜 마시는 국가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세기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술 소비로 명성이 자자한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등과 함께 최고 수준의 알코올 소비량을 나타냈던 것이다. 18세기 후반 스웨덴 농촌에서는 농민 1인당 하루에 10리터 정도의 맥주를 마셨다는 연구결과가 있을 정도다. 이에 1829년에는 1인당 소비할 수 있는 알코올 량을 연간 46리터로 제한하는 법령을 공표하기도 했다.

901년 스웨덴의 한 금주운동단체의 모임. 금주운동은 20세기 초에 들어와 스웨덴에서 가장 큰 규모와 영향력을 가진 대중운동으로 성장하였음.ⓒ출처:http://www.skarhult.se(스웨덴 남부지방의 고성 아카이브)
901년 스웨덴의 한 금주운동단체의 모임. 금주운동은 20세기 초에 들어와 스웨덴에서 가장 큰 규모와 영향력을 가진 대중운동으로 성장하였음. ⓒ출처 : http://www.skarhult.se(스웨덴 남부지방의 고성 아카이브)

당시의 스웨덴은 유럽에서도 매우 낙후된 지역으로 산업화는 더딘데다가 농촌에서는 농지부족으로, 도시에서는 주택과 직장 부족으로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고향 스웨덴을 떠나 이민을 가야만 했던 사람이 1840년대부터 1910년대 까지 약 150만 명에 이른다고 하니 당시 스웨덴 사람들이 겪었던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남아있던 사람들은 여전히 술에 기대 삶의 고단함을 풀고자 했음은 물론이다. 에밀 졸라(Émile Zola)의 진단이 스웨덴에도 적용되고 있었다. "술이 민중을 잡아먹고 있다."

이런 상황을 벗어나 보다 나은 스웨덴 사회를 조직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 다양한 형태의 대중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금주운동이다.

지나친 음주가 농민과 노동자의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좀먹어 스웨덴 사회를 병들게 한다는 점에 왕실은 물론 좌우를 막론한 정치가들이 공감하면서 금주운동은 전 사회적 운동으로 정착되어 나간다. 그 결과 20세기 초에는 술 배급제를 실시하는 한편, 전체 인구의 약 6% 이상이 금주운동단체의 회원으로 등록되는 등 스웨덴은 술을 멀리하는 사회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스웨덴의 국영 주류판매점 쉬스템부라겟(Systembolaget). 1950년대 중반 이후 스웨덴 사람들은 이곳에서만큼은 원하는 대로 술을 구매할 수 있게 되었음. ⓒ출처: https://www.framtid.se
스웨덴의 국영 주류판매점 쉬스템부라겟(Systembolaget). 1950년대 중반 이후 스웨덴 사람들은 이곳에서만큼은 원하는 대로 술을 구매할 수 있게 되었음. ⓒ출처 : https://www.framtid.se

이렇듯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스웨덴은 상대적으로 술에 덜 관대하고 금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했다고 할 수 있겠다. 현재에도 스웨덴에서는 알코올 도수 3.5도 이상의 술은 국영 주류판매점(Systembolaget)에서만 구입할 수 있다. 또한 여전히 주류에 관한 광고는 일체 불허하며 구입 연령 및 음주운전에 관해서는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보드카 등 도수가 높은 술보다는 맥주나 포도주 등을 더 선호하는 알코올 소비 패턴도 보여준다.

다만 최근 들어 전반적인 알코올 소비 증가는 물론 음주 관련사고 증가도 눈여겨 볼 수 있겠다. 200여 년 전 조상들처럼 우정과 사랑을 위해, 또는 슬픔을 달래기 위해 술에 취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스웨덴에서도 점차 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끊임없이 취해야 한다. 그런데 무엇에 취한단 말인가?"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의 질문이다.

필자 : 김기수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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