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크리스마스, 성 루시아 축일...따뜻함과 밝음으로 품는 어둠
스웨덴의 크리스마스, 성 루시아 축일...따뜻함과 밝음으로 품는 어둠
  • 김기수 교수
  • 승인 2018.12.06 1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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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즈 김기수 교수]

"세상에 나쁜 날씨는 없다. 서로 다른 종류의 좋은 날씨만 있을 뿐이다. "19세기 영국의 저명 지식인 존 러스킨(John Ruskin)이란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지만, 황사까지 잔뜩 들러붙은 요즘 우리나라 겨울날씨를 보면 그의 말은 과하다 싶을 만큼 낙관적이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든다.

스웨덴 역시 북극권에 가까운 고위도 나라이니 당연히 겨울은 길고 추울 테고, 항상 '좋은 날씨'라고 위안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어디 그뿐일까? 많은 나라와 마찬가지로 겨울엔 햇빛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 황사나 미세먼지까지는 아닐지라도 저 먼 나라 스웨덴에서도 겨울나기란 예로부터 참 지난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 어려운 계절을 슬기롭고 즐겁게, 때론 희망을 품고 지내기 위해 스웨덴에서도 많은 행사와 풍습이 생겨났고 일부는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처럼 스웨덴에서도 '크리스마스'가 겨울을 대표하는 가장 큰 축제이자 명절로 꼽힌다. 다만 스웨덴을 비롯한 노르웨이나 덴마크 같은 스칸디나비아(북유럽) 지역에서는 이들 나라에서 옛날부터 '동지'를 전후한 시기의 겨울축제를 일컫던 '율(Jul)'이라는 명칭이 '크리스마스' 대신 사용된다.

'율'과 더불어 스웨덴의 겨울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가 12월 13일의 '성 루시아 축일(영어 : Saint Lucy's Day, 스웨덴어 : Luciadagen)'이다.

하얀 드레스와 빨간 허리띠, 초를 밝힌 화관을 쓴 루시아가 이른 새벽 이웃들을 찾아 빵을 나눠주는 모습을 그린 스웨덴의 크리스마스 카드(20세기 초). 오른쪽 아래 빨간 글씨 'God Jul!'은 메리 크리스마스를 의미하는 스웨덴어 표현. ⓒ출처: Tradera Sweden AB(https://www.tradera.com)
하얀 드레스와 빨간 허리띠, 초를 밝힌 화관을 쓴 루시아가 이른 새벽 이웃들을 찾아 빵을 나눠주는 모습을 그린 스웨덴의 크리스마스 카드(20세기 초). 오른쪽 아래 빨간 글씨 'God Jul!'은 메리 크리스마스를 의미하는 스웨덴어 표현. ⓒ출처: Tradera Sweden AB(https://www.tradera.com)

루시아 성인(영어 : Saint Lucy 또는 Saint Lucia, 스웨덴어 : Sankta Lucia)은 3세기 말에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에서 태어났는데, 전설에 따르면 매음굴에 보내지거나 두 눈이 뽑히는 등 온갖 협박과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앙을 지키다 순교하여 후에 성녀로 추대된 사람이다.

루시아(또는 루치아)라는 이름은 '빛'을 의미하는 라틴어 'lux(조명의 밝기를 나타내는 국제단위도 바로 럭스ㆍ룩스)'에서 유래된 것이다. 두 눈을 잃는 고문 자체는 어둠을 상징하는 것이었지만, 루시아는 기독교 계파를 막론하고 중세 이래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이름이 뜻하는 대로 빛과 밝음의 성인으로 받아들여진다고 한다.

스웨덴의 민간풍습에 따르면 밤이 가장 긴 동지에는 사악한 기운이나 악령이 가장 활개를 치기 때문에 이 날을 무사히 잘 지나야만 건강과 안녕을 기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를 위해 동짓날 무렵에 큰 모닥불을 놓기도 하고, 동지를 지나 다시 길어지는 낮을 환영하기 위해 축제를 벌였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전해지기 전부터 행해지던 풍습이라는데, 이것을 크리스마스 즈음을 일컫는 '율'의 기원이라 보기도 한다.

'율'이 기독교의 '크리스마스'와 결합된 것처럼, '성 루시아 축일' 역시 빛과 밝음의 기독교 성인 루시아가 긴 겨울과 어둠의 시간을 이겨내기 위해 애썼던 북쪽 스웨덴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미디어를 통해 성 루시아 축일의 현대적인 이미지들이 정착되었다. 이날을 맞아 스웨덴 이곳저곳에서 저마다의 루시아를 뽑는데, 루시아로 선발된 사람(주로 소녀나 젊은 여성)은 루시아의 순결과 순교, 빛을 의미하는 하얀 드레스와 빨간 허리띠, 조명으로 장식된 머리띠를 갖춘다.

샤프론을 가미해 노랗게 만든 겉면에 건포도를 얹은 빵과 계피 같은 향신료를 이용해 만든 쿠키, 커피나 따뜻하게 데운 음료는 성 루시아 축일 뿐만 아니라 스웨덴의 크리스마스 시즌 전체를 대표하는 음식. ⓒ출처: 스웨덴 공보처(https://sweden.se)​
샤프론을 가미해 노랗게 만든 겉면에 건포도를 얹은 빵과 계피 같은 향신료를 이용해 만든 쿠키, 커피나 따뜻하게 데운 음료는 성 루시아 축일 뿐만 아니라 스웨덴의 크리스마스 시즌 전체를 대표하는 음식. ⓒ출처: 스웨덴 공보처(https://sweden.se)​

아울러 사랑과 희생에 관한 루시아 노래와 더불어 향신료와 건포도가 가미된 노란 빵도 축일 즈음에 스웨덴 사람들이 떠올리는 대표적인 것이다. 이렇게 정착된 성 루시아 축일은 스웨덴 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곳에 있는 스웨덴 계 후손이나 이주민에게 스웨덴의 전통과 정체성을 향유할 수 있게 하는 의미까지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리 성 루시아 축일을 성대하게 치른다 하더라도 스웨덴에서 겨울과 어둠의 시간은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올 것이다. 다만 긴 어둠의 시간을 침울하게 보내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즐겁게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람과 희망을 성 루시아 축일에서 엿본다. 중국에 이런 속담이 있단다. "어둠을 탓하기보다는 촛불 하나라도 켜는 것이 낫다."

필자 : 김기수(한국외국어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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