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의 음악] ‘클래식‘이란...세가지 질문과 그걸 알려주는 네 권의 책
[이수진의 음악] ‘클래식‘이란...세가지 질문과 그걸 알려주는 네 권의 책
  • 이수진 교수
  • 승인 2018.11.12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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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즈 이수진 교수]

셰익스피어와 르네상스 음악을 연결하여 박사학위 논문도 썼지만, 요즘엔 그동안 클래식 음악을 들어오면서 느껴왔던 온갖 감정들을 불러내느라 애청 음악들을 다시 듣고 있다. 어제는 대편성 교향곡으로 베토벤 <7번>과 슈베르트 <8번>, 브루크너 <4번>을 들었고, 소편성으로는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BWV 565,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40>번을 들었다.

덧붙여 어릴 때 듣던 팝송도 듣고, 재즈와 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음악을 듣고 있자니, 음악 재능을 타고 태어난 사람들이 괜히 부러워지고 그들의 예술성이 내게는 없다는 자괴감도 들더라. 이건 내가 욕심이 많은 거겠지...

아무튼 클래식 음악은 슬플 때도 내 곁에 있었고, 기쁠 때도 내 곁에 있으면서 큰 위안이 되어 주었다. 앞으로도 음반은 계속 늘어날 것이고, 나는 음악 한 곡 한 곡에 대해 각별한 애정으로 대하련다.
 
여기서 문득 궁금해진다. 질문 하나. 클래식이란 무엇일까? 단순히 오래된 것을 지칭한다기보다, 시간의 마모를 견디어내고 수많은 세대의 평가를 받아 정전(正典)으로 여겨지는 인류 정신의 고갱이가 클래식이라 하겠다.

따라서 클래식 음악을 감상할 땐 대중가요를 들을 때와 전혀 다른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작곡가의 정신적 고뇌만큼은 아니어도 최소한의 깊이와 지성은 필수다. 이럴 때 타인의 음악 편력기를 읽어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꽤 많은 클래식 음악 감상기가 나와 있지만, 특히 최영도 변호사가 쓴 『참 듣기 좋은 소리』(학고재, 2007)는 클래식 음악 듣기를 매우 적극적이고 즐겁게 편력해 온, 극히 개인적이고 행복한 기록이다.

따라서 클래식 음악을 어느 정도 즐겨온 사람이라면 자신의 경험과 상통하는 저자의 클래식 사랑에 저절로 웃음이 나올 것이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주관적 해석을 이토록 솔직하게 드러낸 글도 드물다. 그러면서도 음악 하나하나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타인의 취향’의 대단히 흥미로운 모범이라 하겠다.
 
이렇듯 예술, 그중에서도 음악은 어떤 정도로든 듣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음악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람은 없고, 동물이나 심지어 식물도 음악에 일정 정도의 반응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특히 클래식 음악의 경우, 듣는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의 정도는 그 깊이에 비례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무작정 클래식 음악을 듣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마침 좋은 안내서가 있다.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홍승찬, 책읽는수요일, 2012))이라는 책이 바로 그것이다. 글쓴이의 이력도 그렇고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애호가로써의 자세 또한 반듯하여 읽는 이에게 클래식 음악의 가치를 일깨워 주기에 적당하다.

작곡가의 생애나 특정 음악에 얽힌 사회적 배경 또는 내외적 의미에 이르기까지, 이 책을 읽고 나면 최소한 책에 언급된 작곡가의 음악만큼은 한 번쯤 들어 보고 싶을 것이다. 남은 일은 꾸준히 듣는 것 뿐이다. 이미 유럽이라는 장소와 시간을 넘어 인류 보편적인 예술로 승화된 클래식 음악은 듣고자 노력하는 그 만큼의 정신적 숭고함과 장엄함, 삶의 신비와 죽음에 대한 극복 또는 삶과 죽음마저 넘어서는 영원불멸성에 대한 힌트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지상을 떠나기 전 클래식 음악을 경험하지 못하면 참 아쉬운 삶을 산 것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이쯤에서 두 번째 질문. 클래식 음악 작곡가와 연주자, 그리고 감상자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풍월당의 주인이자 오페라 애호가이며 정신과 전문의인 박종호 선생의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시공사, 2004~2009) 시리즈 세 권을 읽는 도중 수시로, 그리고 다 읽고 나서도 머릿속을 맴돌던 의문이었는데, 그에 대한 대답으로 ‘고독’이라는 두 글자가 떠올랐다.

비단 작곡 뿐 아니라 창작에 관계된 모든 행동이 그렇겠지만 작곡가가 홀로 앉아 지독한 외로움을 견디어내며 그 외로움을 자양분 삼아 내면에서 아름답고도 장엄한 선율을 발아시키면, 연주자 역시 홀로 최소 1만 시간에 걸치는 각고의 노력과 부단한 연습 끝에 그 선율을 체득하고, 감상자 또한 홀로 방 안에 앉아 그 선율을 들으며 자신만의 정신적인 허기를 달래지 않던가.

루트비히 반 베토벤, 프란츠 슈베르트, 안톤 브루크너, 자크 오펜바흐, 구스타브 말러처럼 나날이 고독했던 작곡가들과, 클라라 하스킬, 디누 리파티, 글렌 굴드처럼 처절하게 고독했던 연주자들,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인 박종호 선생과 나의 절친한 벗이자 유능한 핵의학 전문의인 TJ, 그리고 나를 포함하여 세계 어디에서나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는 수많은 개개인 모두 고독하기에 음악으로 연결되는 순간만이라도 외로움을 잊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뇌하면서 살아 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개인마다 고뇌의 깊이와 무게는 다를지라도 홀로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는 없다. 고독이 잉태한 클래식 음악을 가장 고독할 때 들어 보라. 그러면 고독이 나날의 삶의 원동력이자 친근한 벗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렇게 음악은 뇌 깊숙이 각인되어 여생을 함께 한다. 그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의 주변 환경과 함께 들었던 사람, 또는 상황 따위가 늘 동반 기억으로써 그것이 특별한 경험임을 인식하도록 뇌를 통어(通御)하는 것이다.

그것이 특히 클래식 음악일 경우 작곡가의 생애와 맞물려 나날의 반복되고 지루한 일상사를 견뎌내는 무한한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 나 이외의 타인은 같은 음악을 어떻게 듣고 있을까? 이것이 궁금하다면 앞 서 말한 박종호 선생의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시리즈를 읽으면 된다. 이 책들은 특정 작곡가의 생애와 그 작곡가만의 음악의 특성, 여기에 박종호 선생의 각각의 음악에 얽힌 개인 경험이 덧붙여져 있어, 유익한 정보와 동시에 음악이 어떻게 개인의 삶에 구체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하나의 단서를 제공한다.

내게는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합창>과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등이 그런 음악들이다. 나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막연한 두려움이 엄습할 때, 또는 까닭 없이 우울하거나 거대한 벽 앞에 서 있는 듯 죽음에 대한 어두운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을 때, 아니면 고독이 가슴 깊은 곳에서 고개를 쳐들 때마다, 이 곡들을 들었고, 듣고 있고, 들을 것이다. 그러면 어느새 마음 속 검은 기운은 잦아 들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그저 소리와 선율, 리듬에 불과한, 게다가 시간과 더불어 저 멀리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음악이 내 정신을 이토록 강력하게 지배할 수 있다니. 생각해보니 작곡가들은 어느 누구도 평탄한 삶을 살지 못했다(아, 펠릭스 멘델스존은 예외다). 그런 삶의 스산했던 경험들이 그들의 음악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을 테니, 그렇게 창조된 예술품이 듣는 이에게 작곡가의 생애에 상응하는 나의 체험으로 여겨지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음악은 모름지기 자신만의 방법으로 들으면 되는 것이다. 가능한 한 많이, 자주 들을수록 음악은 죽음을 넘어 저 곳에 대한 공포마저도 수용할만한 삶의 양상으로 여기게끔 나를 위무(慰撫)해준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질문. 클래식 음악은 오직 정서의 순화에만 작용하는가? 그렇지만은 않다는 증거가 있다. 때에 따라 클래식 음악이 시대를 증언할 수도 있다는 사실. 『나의 서양음악 순례』(창비, 2011)라는 비교적 평범한 제목의 책이 그것이다. 이 책은 재일조선인 2세 서경식 선생이 쓴 것으로, 일본이라는 전(前) 식민 모국에서 조선인 부모로부터 태어나 조국을 지척에 두고 일본인도 조선인도 아닌 강제된 재일조선인 2세로 살면서 육체와 정신으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스산함과 고뇌, 그리고 간혹 찾아 들었던 ‘그래도 살아 있다’는 기쁨 등의 온갖 감정 들이 클래식 음악을 매개로 하여 극히 내밀한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처절한 시대의 증언록이다.

그가 재일조선인이라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史實)은, 음악의 정치적 측면을 간파해내고 어떤 음악이 담고 있는 메시지도 시대의 요구에 따라 정치권력에 의해 왜곡·변용될 수 있음을 논의하는 부분에서 확인된다. 즉, 그는 클래식 음악 듣기를, 단순히 정서의 승화를 넘어 남북분단이라는 조국의 현실과 식민 모국인 일본에서 끝없이 분열되어 온 자아의 통합을 향한 실존적 몸부림으로 ‘기록’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조선인 차별이야 익히 알려진 바대로 그 강도는 당사자가 아니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지독스럽게 잔혹하고도 극히 비인간적인데, 서경식 선생은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일본에서 강제된 이방인의 처지로 그 스산함과 절대 고독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클래식 음악 듣기를 택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클래식 음악 듣기를 통해 일그러지고 튕겨져 나간 한일 관계와 역사적 악연의 지속에도 불구하고 한 가닥 희망을 이야기 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클래식 음악은 비록 왕족과 귀족의 후원을 받았어도 결국엔 정신적으로 철저히 독립하지 않았던가?

나는 지금까지 클래식 음악을 어떻게 들었고 듣고 있으며 앞으로는 어떤 자세로 들어야 할까? 그것이 무엇이든 클래식 음악은 내 젊은 날부터 지금까지 나를 붙잡아 주었고, 제대로 일어설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내 삶의 모든 나날과 함께 해 준 친근한 벗이었다. 앞으로도 그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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