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의 冊] 책의 단상⑬...부치지 못한 편지, 읽기 못한 편지, 그들의 이야기
[이수진의 冊] 책의 단상⑬...부치지 못한 편지, 읽기 못한 편지, 그들의 이야기
  • 이수진 교수
  • 승인 2018.10.31 1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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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즈 이수진 교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이 65년만에 비무장화된다. 6ㆍ25전쟁 정전협정에 따라 1953년 10월 설정 후 지난달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군 당국이 체결한 ‘판문점선언 군사분야 이행합의서’에 따른 결과물이다.

한때 근무하는 남북 병력과 군사정전위 관계자들은 당초 양측을 자유롭게 오갔으나 1976년 8월 ‘도끼만행 사건’ 이후 군사적 팽팽한 긴장감이 최고조로 감돌던 곳이었다.

1996년 박상연 작가의 소설 ‘DMZ’를 각색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처럼 초코파이를 나눠먹으면서 이야기하던 남북 병사들의 모습이 다시 현실화될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전쟁을 소재로 했던 두 권의 책을 소개한다.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과 『전쟁과 사회』라는 책이다.

흔히 역사는 해석의 주체와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조작되거나 재구성될 수 있는 한계를 지닌다. 사료로써의 기록이나 구술자료, 사진, 그리고 증언 등에 이르기까지, 지난 시간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고자 하는 과정 자체가 어쩌면 주관적 해석이라는 틀을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한국전쟁에 대한 해석도 마찬가지다. 동서 강대국의 냉전이념이 충돌한 국제적 대리전이라는 시각과 조국통일이라는 민족의 염원이 담긴 해방전쟁이라는 시각, 남침유도설과 북침설 등, 단순히 한반도에서 일어난 내전을 넘어 다각도로 접근이 가능한 양상을 띤다.

이렇게 의견이 분분하고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역사적 사건에 대해 결정적인 근거를 제공하는 자료가 있다면?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삼인, 2012)라는 책이 바로 그렇다. 제목처럼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주로 북한에서 쓰여졌지만 정작 받을 사람들에게 보내지지 못한 채 미군에게 노획된 다양한 편지들을 모아 엮은 1차 사료다.

편지란 무엇일까? 쓰는 사람과 받는 사람 양측이 개인적으로 가장 은밀한 부분까지 숨김없이 드러낼 수 있는 사적(私的) 글쓰기가 아닌가? 그러니까 이 책에 실린 편지글들은 그 자체로 개인의 심신 상태를 보여주는 지극히 주관적인 단편들이지만, 그것들이 모여서 한국전쟁이라는 거대 담론의 정치적, 사상적 시각에 가려 간과되어 온 전쟁 직접 당사자들의 목소리라는 점이 오히려 압도적인 속도로 육박해 온다.

편지의 주인공들 중에는 인민군도 있고 고향의 아버지도 있으며, 아내가 남편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여동생이 오빠에게, 남동생이 형에게, 어머니가 아들에게, 오빠가 여동생에게 등, 전시(戰時)에 쓰여진 편지들임을 감안하고 읽어 볼 때조차도 잔잔한 감동과 애잔한 슬픔, 대지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인간으로써의 고뇌와 환희 등, 전쟁과 연결된 일상사가 다채롭게 담겨 있다.

이들 하나하나의 사연은 결국 한국전쟁이 거대한 이념과 사상의 충돌이라는 전형적 전쟁 해석을 뛰어 넘어 전쟁의 진행과정과 파국적 결말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던 원동력임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건 공산주의건 사상 이전 두 개의 정치권력 집단의 욕망과 권력유지의 다툼에 희생되어 간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살아나 전쟁의 부질없음과 그럴듯한 명분에 가려진 생명 경시, 파괴욕구의 발산에 불과한 이념의 덧칠을 벗겨 인간성의 본질을 깨닫게 한다.

이념도 좋고 사상도 필요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가족과 헤어지거나 재산을 잃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전쟁 이전에 사람이 먼저 살아야 한다. 어떤 명분을 내세워서라도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이념은 폐기되어야 한다. 특정 이념이 권력 강화에 동원되어 어떻게든 통치기구와 통치방식을 합리화하는 행태도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 맥락에서 지양되어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다. 이념이 없었어도 사람들은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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