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의 冊] 책의 단상⑫...글을 쓴다는 것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수진의 冊] 책의 단상⑫...글을 쓴다는 것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 이수진 교수
  • 승인 2018.10.18 17: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일리즈 이수진 교수]

아들이 태어나던 해인 1995년은 내 나이 30으로 막 20대를 마감하고 청년기의 절정에 들어서는 시기였다. 당시의 일기를 읽어보면 아들의 탄생을 전후하여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탄생과 소멸, 생성과 파괴, 육체와 영혼 등, 대척점에 서 있는 개념들을 붙들고 그 참 의미를 찾고자 씨름하면서도 아들의 간단(間斷)없는 성장을 고대하던 당시의 내 모습에서 현재의 나를 형성한 추동력을 본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많은 책들을 읽었고 가능한 독후감을 썼으며 때로는 독서론과 서재론 등에 대해서도 간간히 생각을 정리해왔다.

(10대와 20대의 독서는 30대와는 다르다. 젊을 때는 아무 책이나 마구 읽어도 그대로 정신의 자양분으로 쓰이지만, 30대는 처음으로 삶에서 흔들림 없는 체계와 올바른 방향이 필요한 시기다. 따라서 30대부터의 독서는 수신과 수양, 성찰과 사유의 틀을 확고히 하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데 필요한 독서라야 한다. 나는 이러한 기준을 정해 그에 따라 책을 선택하고 읽었으며 책속에서 저자가 말하는 도덕률을 따라 어김없이 살고자 지금껏 노력해왔다)

이렇게 써온 글들을 추려내 스프링 제본을 해 본적이 있는데, 옛 조선의 선비들이 그날그날의 성찰과 사유의 실마리를 붙잡고 기록한 글들을 다시 한 번 깨끗하게 베껴 쓰고 그렇게 모은 글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고자 땀을 흘리면서 송곳으로 구멍을 뚫고 실로 한 땀 한 땀 꿰매던 그 정성과 그 마음의 실태를 나도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조선의 선비들이 글을 썼던 이유는 무엇일까? 또 그렇게 쓴 글을 구태여 한 권의 책으로 묶고자 했던 그 마음의 언저리엔 어떤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을까? 물론 현대처럼 글을 써서 그것을 책으로 묶는다는 행위는 책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욕망과는 전혀 달랐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행해졌던 책의 출판이란 통치에 필요한 법전 또는 지식인들의 수양에 필요한 경전이나 역사서 등에 국한되어 있었고, 국가에서 책의 출판과 배포에 이르기까지 일괄 관리하는 체제였으므로 가난한 일반 백성이 책을 소유한다거나 책을 읽고 그로 인해 촉발된 자신의 생각을 글로 기록하는 행위는, 전혀 없지는 않았겠지만, 결코 많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책을 소유하고 읽거나 또는 글을 쓰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양반층 내지 선비계층에 국한되어 있었다.

특히 선비들은 과거를 거쳐 관직에 등용되기 전에는 경전을 읽으면서 수양에 필요한 지혜도 더불어 습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세상에 나가 경륜을 발휘하기 전까지는 제 몸 하나와 정신 하나를 올바르게 다스리고 자신이 삶의 주인으로써 외부의 바람에 흔들림 없이 지탱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 내면의 깊이를 철저히 갖추고 지식과 지혜를 겸비하며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반듯함과 무거움을 견지하는 것.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일관성, 어떤 형태의 권력과도 타협하지 않을 수 있는 정직성, 어떤 유혹과 욕망에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굳건한 마음의 빗장, 바로 이 지점이 내가 닮고 싶고 따르고 싶은 조선 선비의 모습이었다. 조선의 대표적인 선비들은 매일을 이렇게 살고자 노력했고 그날그날의 성찰 결과들을 빼어난 글로 남겼다. 그렇게 쓴 글들을 스스로 엮으면서 그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을 인간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성심성의껏 행해나갔던 것이다.

나도 그들처럼 그렇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1995년 나이 30에 아들의 탄생과 함께 촉발된 내 삶에 대한 방향성을 조선 선비의 그것에 맞추어 재설정하여 그처럼 살아왔고, 이제 중년의 절정기에 제 궤도에 올라 다시 한 번 조선 선비의 정신적 영도 아래 누구의 삶과도 구별되는 나만의 길을 걸어 나가고 있다.
 
앞으로의 20년도 어김없이 내 작은 서재에서 책과 함께 하는 삶이 이어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어떤 책을 읽고 어떤 글을 쓰게 될지도 자명하다. 먼저 사서삼경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경전과 조선 선비들이 철저한 자기반성 과정에서 써내려간 수신서 그리고 역사서와 사상서 위주의 깊고도 폭넓은 독서와 그로 인해 촉발될 도덕성과 양심의 적극적 내재화, 인간성과 사회를 똑바로 볼 수 있는 객관적이고도 타협하지 않는 시야의 확보 및 철두철미한 정신의 표백과 관련 있는 글쓰기.

지금은 물론 조선 시대도 아니고 선비의 삶과 행동이 대중의 삶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시기도 아니다. 또 조선 선비라고 해서 모두들 도덕적이고 올곧은 삶을 살았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한국인들이 정신적 공허와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허기에 시달리고 있는 지금, 대표적인 조선 선비들이 실천했던 똑바른 삶의 자세와 흔들림 없는 정신적 관철이야말로 되살려야 할 가치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렇게 노력하고 제 몸과 제 마음 하나 제대로 지켜나갈 때 현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비도덕의 창궐과 인명경시 풍조, 정치적 후진성 및 갖가지 무질서와 부조리들이 해결될 것이라 믿는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독서와 반성, 나날의 자기성찰을 멈추지 않는 성실한 글쓰기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독서와 글쓰기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자신의 내면과의 깊은 대화를 위한 독서와 글쓰기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명칭 : 데일리즈로그(주)
  • 발행소 : 03425 서울특별시 은평구 서오릉로21길 8, 해원빌딩 301호
  • 대표전화 : 02-385-3118
  • 팩스 : 02-385-3119
  • 제호 : 데일리즈
  • 등록번호 : 서울 아 02435
  • 등록일 : 2013-01-21
  • 발행일 : 2013-01-21
  • 발행인 : 신원재
  • 편집인 : 김경수
  •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정민
  • 편집국장 : 신원재(010-6331-3610)
  • 데일리즈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3 데일리즈.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iesnews@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