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의 冊] 책의 단상⑩...사색하는 독서 : 인간은 지구를 지켜라
[이수진의 冊] 책의 단상⑩...사색하는 독서 : 인간은 지구를 지켜라
  • 이수진 교수
  • 승인 2018.10.0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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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즈 이수진 교수]

밤하늘을 응시하면서 사색에 빠져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이 우주가 얼마나 광대하고 무한한지에 생각이 이르러 자신이 얼마나 작고 하찮은 존재인지 깨닫고 자만심을 버린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저 우주에 비하면 지구는 또 얼마나 작고 먼지보다 못한가 하는 생각에 이르러 허무하거나 우울한 상념에 마음이 허전했던 적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빛 이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니! 지구도 블랙홀에 빨려 들어갈 날이 올 것인가?     나는 이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태양계에서 유일하게 생명이 존재하는 지구에 바이러스나 세균도 아닌 어쩌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스스로 여기)는 사람으로 태어나 살게 되었을까, 하고.

도대체 이 지구 위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고. 우주의 역사는 137억년이고 지구의 역사도 46억년이라는데, 그 긴 시간 동안 우주의 한 쪽 끝 태양계에 위치한 지구에 태어나 잠깐 살다가 사라져간 수많은 생명체들에게 각각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아니, 저 광막한 우주 공간 속에서 개별 생명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나의 생명을 인식하고 나 자신과 타 생명의 유한함을 슬퍼하며, 탄생과 소멸이라는 우주적 순환의 연결고리 끝자락에 매달려 얼마나 성실하게 살고 있는 것일까, 하고.
 
언제 어디서 읽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1989년에 소행성 하나가 가까스로 지구를 스쳐 지나갔다는 것. 그 소행성의 위력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5만 배이고, 공룡의 멸종 원인도 그 옛날 지구를 때린 소행성이 만들어낸 거대 먼지구름이 1년 넘게 태양빛을 차단하여 빙하기를 유발했기 때문이라는 것. 공룡들이 다가오는 자신들의 갑작스러운 멸종에 대해 알 수 있었다 해도 결코 피할 수는 없었으리라. 
 
지금은 어떨까? 할리우드 재난 영화의 단골 소재로나 쓰이고 있는 소행성과의 충돌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과학자들의 연구와 발견에 따르면 우리 태양계의 화성과 목성 사이에 NEAs(Near-Earth Asteroids)라는 소행성대가 존재한다고 하는데, 이것들 중 어느 하나가 언제든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은 상존한단다. 그러니까 언제라고 특정할 수는 없지만, 예를 들어 기원 후 79년 8월 24일 정오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연안에 있는 베수비오 화산이 갑자기 폭발하여 나폴리 남동부의 도시 폼페이가 당시 인구의 약 10퍼센트에 해당하는 2,000여명을 잃고 도시 자체도 소멸해버린 역사적 사실을 떠올려 볼 때, 언젠가는 현실로 발생할 가능성은 높다고 봐야 한다.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기 전 분명 전조에 해당하는 일들이 벌어졌을 텐데도 누구 하나 경고의 신호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 결과는 참혹한 것이었다. 고고학 발굴로 세상에 드러난 당시의 상황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폼페이 시민들은 평소처럼 각자 일상생활을 영위하다가 - 예를 들어 빵을 사다가 또는 결혼식을 올리다가 - 그 생활공간에서 그대로 시간마저 멈추어 버린 것이다. 이것은 도시 하나가 소멸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소행성과의 충돌은 지구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제 인식을 지구로 돌려 국내 문제부터 생각해보자. 현재 한국 사회의 공공성과 도덕성은 어느 정도의 수준인가? 사회 각계에 만연한 부정과 부패, 비리와 극히 낮은 수준의 도덕적 양심은 압축 성장이 잉태한 폐해라고 간단히 치부하기에는 골이 너무 깊다.

일전에 TV에서 한국사회가 성공과 경쟁만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는 내용의 프로그램을 보았는데, 타국에 비해 극히 낮은 공정성과 시민성도 오직 나와 내 가족만 물질적으로 풍요로우면 그 뿐, 타인은 그저 경쟁에서 쓰러트리고 넘어서야 내가 성공할 수 있다는 극히 이기적인 생각이 우세함에 따라 쉽게 무시되고 마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아이들이 일찍부터 이러한 인간성의 한 단면에 익숙해지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지.
 
이번엔 국제 문제. 북한 핵, 일본 우경화와 위안부 강제동원 부정, 국제 테러리즘의 증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끊이지 않는 분쟁, 시리아 내전과 민주화 운동에 따른 학살, 난민문제, 아프리카 각국의 내전 등, 대망의 21세기인 지금도 인간은 고대, 중세시대처럼 반목과 다툼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간끼리의 투쟁에서 희생된 이들은 또 얼마나 많고, 한 쪽의 근거 없는 오만과 또 한 쪽의 뿌리 깊은 편견에 의해 지금도 상호이해는커녕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 안간힘 쓰고 타인의 것은 강제로 빼앗아서라도 내 것을 늘리려 하는 욕망의 충족에만 골몰하고 있는 꼴이라니.
 
국내든 국제든 우리들 인간은 당장 눈앞의 이익과 물질적 풍요로움의 확보에 골몰하느라 정작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공간인 지구의 상황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 서구 선진국들은 중국이나 인도, 한국 같은 후발 국가들에게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감소를 강제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석유 사용량이나 자동차에 대한 의존을 줄이려고 하지 않는다. 한 쪽에서는 거의 매일 어린 아이들이 대량으로 굶어죽어 나가도 또 한 쪽에서는 옥수수를 바이오 연료로 바꾸어서라도 자동차 타는 것을 절대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지구를 수십, 수 백 번 파괴하고도 남을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강대국들은 핵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지만 정작 자국민을 핵 볼모로 삼고 있다는 모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가정을 해보자, 우리들이 지구 위에 매달려 이렇게 개인적 욕망과 성공, 집단적 경쟁과 우열이라는 허무한 가치를 추구하고 있을 때, 어느 날 소행성 하나가 지구를 향해 똑바로 다가오고 있다고. 충돌까지는 단 3일 남았다고.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 드라마에서 주인공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단골 소재로 쓰이는 타개책처럼, 권력과 금력이 있는 사람들은 전세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날아 갈 것인가?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면 한국인들이 그렇게 동경하고 원정출산을 해서라도 자식이나마 미국 시민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지상의 유일한 강대국 미국도 동시에 소멸할 텐데.

아니면 폼페이 시민들처럼 바다를 향해 전력 질주할 것인가?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면 지진과 쓰나미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대량 파괴가 순식간에 일어나 나의 죽음과 타 생명의 죽음을 인식하기도 전에 모든 것이 동시에 소멸해버릴 텐데. 
 
비록 당장은 벌어지지 않을 먼 훗날의 가정이라 해도 언젠가는 일어날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들은 오직 개발 논리에 길들여져 이 지구가 얼마나 취약한 상태에 처해 있는지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원을 착취하며 환경 파괴를 일삼고 있다. 게다가 인간들은 여전히 서로를 이해 못하고 증오하며, 가공할 핵무기를 축적하는데 골몰하고 어떤 명분을 꾸며서 라도 타국을 침략하거나 대량학살을 반복하고 있다. 이성을 자랑하는 인간이 정작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할 때는 왜 이리도 비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인지? 내 목숨이 중요하면 타인의 목숨도 당연히 중요한 것 아닌가? 결국 지구 위에서의 인간의 모든 행동들도 우선 지구가 존속해야 가능한 것 아닌가? 지금이야말로 국가와 인종을 넘어 진정한 상호이해를 추구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2002년에 다치바나 다카시의 『우주로부터의 귀환』에서 읽었던, 미국 우주 비행사들의 우주체험 후의 극적인 가치관 및 시각의 변화에 관한 내용이 생각난다. 그 중 몇 개를 인용해 보자. “지구는 우주의 오아시스다.”(유진 서넌), “지구를 떠나 보지 않으면, 우리가 지구에서 가지고 있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제임스 라벨), “저 멀리 지구가 오도카니 존재하고 있다. 이처럼 무력하고 약한 존재가 우주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신의 은총이라는 사실을 아무런 설명 없이도 느낄 수 있었다.”(제임스 어윈), “우주에서 보면 국경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국경이란 인간이 정치적 이유로 마음대로 만들어낸 것일 뿐이고 원래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국경이란 게 얼마나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지 잘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사이에 두고 같은 민족끼리 서로 대립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죽인다. 이건 슬프고도 어리석은 짓이다 ... 아무리 싸워도 그 가운데 누구도 이 지구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 여기 이외에 우리들이 살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월터 쉬라), “눈 아래로 지구를 보고 있으면 지금 현재 어딘가에서 인간과 인간이 영토와 이데올로기를 위해 피를 흘리고 있다는 사실이 거의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바보 같은 짓처럼 생각된다.”(돈 아이즐리)   
 
그렇다. 우리들 인간과 여타 생명체들도 지구를 떠나서는 어디에서도 살 수 없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이야 말로 우주에서 지구의 위치와 개개 인간의 참 역할에 대한 깨달음이 아닐까? 나는 죽기 전까지 절대 우주여행을 못 해볼 것이다. 세계적인 재벌들이나 우주여행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을 지불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그 재벌들이 우주여행에서 무엇인가 하나라도 깨닫고 지구로 돌아온다면 재벌들에게 고용된 보통 사람들이 살기가 조금 나아지지는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들이 깨달을 수 있다면. 비록 내 육체는 지구에 단단히 뿌리 내리고 있지만, 나의 정신은 지구를 넘어 우주에서 유영하며 우주와 하나가 되리라. 저 아득한 우주라는 시공에서는 탄생도 소멸도 하나의 원리 속에서 궁극으로 순환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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