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의 冊] 책의 단상⑨...사색하는 독서 : 무덤 주인공과의 교감
[이수진의 冊] 책의 단상⑨...사색하는 독서 : 무덤 주인공과의 교감
  • 이수진 교수
  • 승인 2018.10.09 1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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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즈 이수진 교수]

시간이 날 때마다 아침에는 주로 산길을 산책하거나 운동을 하는데, 가끔씩 문고본(주로 쇼펜하우어나 니체가 쓴 고독과 사색을 즐기기에 좋은 책들)을 들고 나가 동네 산에 산재한 무덤 주변에서 독서에 열중하는 때가 잡념을 잊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다.

무덤가에서 책을 읽는 이유는 나보다 먼저 이 세상에 태어나, 인간의 삶이 대개 그렇듯, 행복보다는 고뇌를 더 많이 겪으며 힘겹게 살다가 나보다 먼저 죽어 땅에 묻혀 있는 무덤의 주인이 이제라도 편안하게 쉬고 있을까 생각하면서 책을 읽고 있는 그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고 싶기 때문이다.

만약 무덤 속의 주인이 독서인이었다면 어떤 책들을 읽었을까? 비록 일평생 책 한 권 읽지 않았던 사람일지라도 죽음 앞에 누구든 예외가 없고 삶은 한 번 뿐임은 깨달았을 테니 그 나름으로 가치 있게 살았을 테지만...

무덤 속의 주인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돈의 노예로 살았을까, 권력과 명예에 집착했을까, 정신적이었을까 아니면 물질적이었을까,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지만 나보다 먼저 살고 먼저 죽은 사람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들과 듣고 싶은 대답들이 너무도 많다. 만약 부활해서 다시 한 번 살 수 있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도 궁금하다. 
 
이제야 새삼 인간의 삶 자체가 얼마나 자주 인간을 시험하고 올바른 답을 요구하는 최고ㆍ최대의 도덕률인지를 깨닫는다. 예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생명과 죽음의 순환 속에서 수많은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이 도달했던 삶에 대한 대답은 그들의 것이었을 뿐, 정작 나의 삶은 매일처럼 나 스스로의 사색과 성찰을 통해야만 진정 나의 것으로 확립되어 나를 붙잡아 올곧고 양심에 거리낌 없이 살아가도록 밀어준다는 사실을...

언제는 그렇지 않았을까 만은, 인간의 삶 자체가 끝없는 시련과 인고, 고통과 극복, 유혹과 절제, 부정과 양심 사이에서 인간을 단련시키고 그로써 후회하지 않을 태도와 자세를 확고히 하도록 격려하는 원동력이라는 것.

참다운 사람이 갈수록 드물어지고 세인(世人)이 부러워하는 삶이라야 금력과 권력을 소유한 소수의 그것일 뿐, 정작 소박하게 도덕적으로 사는 삶은 쉽게 무시되고 반향(反響)조차 없는 세태. 인간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매일의 육체적 허기를 세끼 식사로 달래듯, 매일의 정신적 공허감을 채우고자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쓴다. 매일 아침 성현(聖賢)의 글을 읽고 매일 오후 고전음악을 듣고 매일 밤 고전명화를 본다.

성현의 글에서 가벼움 보다는 무거움을 배우고 고전음악에서 천박한 감정보다 깊은 정서를 체험하며 고전명화를 통해 순간의 쾌락보다 영원한 환희를 지양한다. 오늘 아침엔 율곡 선생, 퇴계 선생과 대화를 나누었다. 내일은 남명 선생, 성호 선생께 도덕적 삶에 대해 질문을 드릴 것이다. 내 남은 삶의 진정한 스승은 살아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없다.

도덕과 양심이 박물관에 들어 앉아 있는 시대, 돈과 권력만이 지향해야 할 가치로 여겨지고 있는 천박하고 가벼운 쾌락의 시대에, 옛 성현의 글을 읽고 그들의 삶을 경모하며 태도를 따르고자 하는 것이 어찌 시대에 뒤쳐진 자의 몸부림일 뿐이겠는가! 앞으로도 고독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고 성현과 함께 살련다. Con fuoco!

*Con fuoco : 음악용어로 '정열을 가지고', '정열적으로'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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