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의 冊] 책의 단상⑧...책은 사회를 변화시키고, 사람의 도덕성을 채운다 2
[이수진의 冊] 책의 단상⑧...책은 사회를 변화시키고, 사람의 도덕성을 채운다 2
  • 이수진 교수
  • 승인 2018.09.30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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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즈 이수진 교수]

사회학자이자 작가인 정수복 선생의 『책에 대해 던지는 7가지 질문』(로도스, 2013)의 내용 중에서 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그에 대한 네번째 답까지 마쳤다.

다음은 다섯 번째 질문이다. 사람마다 독서법이 다를 텐데, 이 책에 소개된 많은 독서법 중에서 ‘병렬독서법’은 나도 오래전부터 실행해온 방법이며 지금도 주로 이 방법으로 읽는다. 쉽게 말해 여러 분야의 책들을 하루의 시간대 별로 읽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아침엔 시집을 읽고 점심 땐 역사서를 읽거나 저녁엔 철학서 또는 과학논문 등을 읽는 방법으로 다종다양한 분야들을 넘나들며 읽는 것이다. 처음엔 읽은 내용들이 뒤섞여 힘들겠지만 익숙해지면 이것만큼 좋은 독서법도 없다. 나는 그저 내 호기심에 따라 이 분야 저 분야의 책들을 읽었던 것인데 꽤 많은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이 방법을 써왔다는 것을 알고 책 읽기도 타고난 성향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튼 거의 매달 나는 동시에 다섯 권의 책을 읽고 동시에 읽기를 다 끝낸다. 그리고 한 주제의 책을 반드시 세 권에서 다섯 권 이상 읽는 것을 습관처럼 행한다. 그래야 어떤 분야에서건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찬반 모두를 수용할 수 있으며 편견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독서법이 무엇이든 주어진 시간에 읽고 최대한의 효과를 끌어내는 노력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음은 두 말 하면 잔소리가 될 것이다.  
 
여섯 번째 질문. 나는 지금까지 몇 권의 책을 읽었고 지금 읽고 있으며 앞으로 죽기 전까지 몇 권의 책을 더 읽을 수 있을까? 독서가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평생 몇 권의 책을 읽었을까? 이 질문은 네 번째 질문과의 관련 하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내 편견일지 모르겠지만 만약 문학서 읽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예를 들어 인문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서에 비해 조금 빨리 더 많이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 「대심문관」 편이나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들, 또는 괴테가 60여년에 걸쳐 쓴 『파우스트』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피네간의 경야』 등, 세계문학이나 한국문학에도 철학 못지않게 난해한 작품들이 즐비하지만, 그래도 다른 분야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독서하면 소설을 떠올리고 그만큼 문학서를 많이 읽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렇다는 뜻이다.
 
나는 30대 이후 문학서는 거의 읽지 않았고 주로 인문사회과학서와 자연과학서에 집중해 왔는데 솔직히 한 권 한 권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전공 분야인 영어영문학에서 크게 벗어난 책들을 읽으며 내 지력(知力)을 있는 데로 끌어내어 저자와 대등하게 대화하기란 고사하고 그 난해한 용어며 낯선 개념들에 압도되어 중도 포기하고 싶은 경우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권씩 힘들게 읽어낸 책들이 늘어감에 따라 지금은 다소 편해졌다고 해야 할까, 어떤 분야의 책을 읽던 무리 없이 이해하며 재미도 덩달아 느낄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특히 천문학이나 고고학, 인류학, 신화학, 국제정치학 등,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분야들을 마음대로 넘나들며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계속해서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이 많은 분야에서 반드시 읽어야 할 책들만을 읽는다 해도 죽기 전까지 얼마나 많이 읽을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덧붙여 추리소설이나 SF 등, 그동안 모으기만 하고 읽지 않은 장르 문학과 순수 문학작품들은 노년기의 즐거움으로 남겨두었으니 어쩌면 지금보다 노년기에 더 많은 책을 읽을 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일곱 번째 질문. 책을 읽는 사람이 책 읽기를 끝마침과 동시에 모두 극적으로 변화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물며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겠는가? 만약 세상 사람들이 동시에 같은 책을 읽는다고 가정할 때 그 책이 무엇이든 읽는 사람의 정신에 어느 정도의 흔적이나 또는 사고 과정에 조그만 실마리를 제공할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의 근본까지 뒤흔들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모시키기는 힘들지 않을까? 이 말은 어떤 책이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고 있어도 읽는 사람의 타고난 인격과 도덕성 또는 성실성 따위의 경중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는 누구든지 생물의 점진적 진화를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고, 기독교인이라면 책 내용과는 정반대로 신의 존재를 더욱 부각시키고 진화론을 부정하는 데 골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사회적·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다룬 책일 경우, 각각의 분야에서 격렬한 논쟁을 유발할 수는 있어도 오히려 읽는 사람의 단단하게 뿌리박힌 편견을 더욱 강화시키는데 이용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떤 책을 읽고 난 뒤 내가 얼마나 변했는가에 초점을 맞추기 이전에, 예를 들어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 미국적 가치관을 강화하는데 이용되는 상황을 단순히 아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나온 프랭크 레흐너·존 보일이 함께 쓴 『문명의 혼성』이나 하랄트 뮐러의 『문명의 공존』, 그리고 조너선 색스의 『차이의 존중』 등의 책까지 깊이 읽어야 찬반양론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시각을 가질 수 있고 그것이 바로 진정한 변화의 조짐이 아닐까? 만약 권력지향적인 사람이 이덕무의 『사소절(士小節)』을 읽으면 내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아니, 변화의 조짐이 있기는 할 것인가? 『사소절』은 한 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렵지만 어린이와 여성, 그리고 선비가 지켜야 할 예절을 소소한 사항까지 적어 내려간 수신서이다. 그 어디에도 권력을 탐하라거나 주색잡기를 권유하는 구절이 없다. 오직 내 몸 하나 도덕적으로 잘 건사해서 부끄럽지 않게 살기를 권유하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책을 읽고 변할 사람은 읽기 이전에 이미 갖추어진 사람이다. 하물며 책이 사회를 어떻게, 얼마나 변화시킬지도 읽는 사람의 도덕성이 충만할 때나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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