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의 冊] 책의 단상⑥...추리소설을 읽는 것은 ‘쾌락’과 ‘인간성 경계’의 사이쯤
[이수진의 冊] 책의 단상⑥...추리소설을 읽는 것은 ‘쾌락’과 ‘인간성 경계’의 사이쯤
  • 이수진 교수
  • 승인 2018.09.13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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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즈 이수진 교수]

영국에서 추리소설(mystery novel) 또는 탐정소설(detective story)이라는 대중문학 장르가 탄생하게 된 원인 및 배경을 고찰해보면, 19세기 말 런던에서 있었던 ‘난도질자 잭’에 의한 일련의 매춘부 연쇄살인이 미궁에 빠진 채 해결되지 못한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도 진범이 누구인지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난도질자 잭의 살인행각은 범인이 자신을 가리켜 ‘Jack the Ripper’라고 불렀으며, 현장에서 발견된 매춘부들의 시체가 유래 없을 정도로 잔혹하게 난도질을 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유독 주목을 끈다.

글로 쓰는 것조차 소름이 끼칠 정도의 광포함이 특징이었던 살인 현장. 다시 말해 신체의 훼손에 무서울 정도로 정열을 기울이는 편집광적인 행위에서 살인이 하나의 가학성 쾌락의 분출임이 밝혀진 사건. 여덟 명의 매춘부가 차례로 잔혹하게 살해를 당하는 가운데 범인에게 비웃음을 받으며 헛물만 켜던 런던 경시청. 범인의 치밀한 두뇌를 따르지 못하는 경찰의 무능력에 대한 일반 시민의 분노와 상대적인 불안 등이 더해져서 추리소설이라는 독특한 장르가 각광을 받았던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영국에서는 의사였던 아서 코넌 도일이 셜록 홈즈라는 탐정과 왓슨이라는 조수를 내세운 일련의 『셜록 홈즈』 시리즈로, 미국에서는 에드거 앨런 포우가 뒤뺑이라는 프랑스인을 주인공으로 한 몇 개의 단편 추리소설로 바야흐로 변화하는 시대와 인간성을 담은 새 문학 장르를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이후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추리소설은 폭넓은 독자를 확보하며 세력을 넓혀갔다. 애거서 크리스티, 앨러리 퀸, 레이먼드 챈들러, 로스 맥도널드, 더쉴 해미트 등, 많은 추리소설 작가들이 순수문학이 담지 못하는 예리한 통찰력과 분석력으로 인간성의 감추어진 진실을 파헤쳐 ‘인간 바로 보기’에 기여했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소설보다 더 잔혹한 법. 미국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연쇄살인을 고찰해보면, 인간에 의한 인간의 파괴가 어느 정도까지 잔혹한지를 알 수 있다. 유아 및 어린이 살인 유기, 연관 없는 사람들을 죽이는 무동기 살인, 생활이 되어버린 어떤 가족의 살인행각 등, 추리소설 작가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현실에서의 살인은 극한까지 치닫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추리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홈즈나 뽀와로 같은 탐정들이 실제로 나와서 초인적인 추리력을 발휘해 미궁에 빠진 살인사건을 해결해주길 내심 바랄지도 모른다.

대단히 박학한 지식과 비정할 정도의 논리력, 여기에다 행동력까지 겸비한 탐정이 있다면 세상이 더욱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실제 아서 코넌 도일이 홈즈를 죽은 것으로 처리하고 집필을 중단했을 때, 독자들의 원성으로 다시 살려내 몇 편의 소설을 더 발표했던 일화만 봐도 사람들이 홈즈 같은 탐정의 현실 재림을 얼마나 바라고 있는지를 알 수 있지 않은가?
 
이쯤에서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어떻게 인간성의 고찰에 기여하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미국의 추리소설가 앨러리 퀸이 쓴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해문출판사, 1989)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중략) ... 남편이 자기 아내를 불태워 죽이거나, 자기 누이를 토막 내거나, 자식이 어머니의 머리를 내리치는 근친간의 범죄, 부도덕하고 퇴폐적이고 지저분한 이야기는 알고 계시겠죠? ... 」(p. 321) 또는 「그 남자를 미치광이라고 하는 것은 뇌수 한 가운데 약간의 틈, 한 개의 비뚤어짐이 있다는 뜻이지요. 그 한 점을 제외하고는 그는 모든 면에서 건전합니다 ... (중략) ... 실제로 살인자들은 겉보기엔 교수님이나 저처럼 멀쩡한 인간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극히 심한 정신병자도 있지요.」(pp. 321~2)
 
두 개의 인용문에서도 알 수 있듯, 사람은 누구든지 조그만 동기만으로도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 어떤 심리학도 이처럼 직접적으로 인간성의 밑바닥을 훑어내 뿌리째 뒤흔든 적은 없다. 우리들 모두가 부정하고 싶어 하지만 결코 피할 수 없는 진실. 로버트 K. 레슬러라는 FBI 심리수사관이 쓴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바다출판사, 2004)에는 연쇄살인범이 최초에 생명을 죽이게 된 동기에서부터 연쇄살인을 저지르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잘 나와 있는데, 이 책에서는 연쇄살인범을 괴물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특별한 사람은 아니다. 미치광이라기보다는 평범한, 우리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따라서 많은 추리소설들이 도달한 결론은 누구든지 살인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누구든지 살인을 범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공권력이나 법이 더욱 강력해야 한다는 것, 현실에서는 초인적인 탐정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 인간성을 똑바로 보고 허황된 말놀음에 빠지지 말라는 것, 인간 폭력성의 근원을 파헤쳐 말살해야 한다는 것, 즉 인간성에 대한 부단한 경계라고 하겠다.  
 
이쯤에서 위에서 논한 추리소설의 장르적 특징을 『즐거운 살인』(이후, 2001)를 통해 좀더 이론화 해보자. 우선 책의 표제부터 『즐거운 살인』이라니? 참, 엽기적인 표제가 아닐까 싶은데, 실제 영어판의 제목도 <Delightful Murder : A Social History of the Crime Story, 1984>이니까 직역이어서 오히려 거부감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저자인 에르네스트 만델(Ernest Mandel, 1923~1995)의 약력을 살펴보니 ‘트로츠키 주의자 또는 맑스주의 경제학자’로 소개되어 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가 추리소설의 역사를 썼다고? 무엇인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지만, 저자의 머리말을 읽어보면 대단히 타당한 논리에 수긍하게 된다.

“... 모든 대륙의 수십 개 나라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범죄소설을 읽는다. ... 이런 상품이 충족시켜주는 욕구들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지난 수 세기에 걸쳐 이 욕구들은 어떻게 변해 왔고 부르주아 사회의 일반 구조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 ... 나의 접근법은 헤겔과 맑스가 개진했던 전통적인 변증법이다. ... 맑스주의자가 범죄소설을 분석하는 데 시간을 소비한다는 것이 경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나로서는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변명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역사유물론은 모든 사회 현상에 적용될 수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한다. 어떤 연구라도 본성상 다른 연구보다 가치가 덜한 것은 없다.”(p.9~12)
 
그래서일까, 부제처럼 이 책은 범죄소설(또는 일반적으로 추리소설)을 사회적 맥락에서 일종의 계급투쟁이나 사회적 서열간의 갈등, 부르주아의 안락한 거실에 앉아 자신은 살해당할 염려 없이 유쾌한 기분으로 소비되는 고급 오락물로 분석한다.

마치 현대의 관객들이 자신은 살해당할 두려움 없는 어두운 극장에 앉아 공포영화의 주인공들이 잔혹한 살인자에게 한 명씩 처참하게 죽어나가는 장면을 보며 환호하듯, 범죄소설을 읽는 독자들도 마찬가지의 쾌락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나의 경우를 곰곰 생각해보면, 초등학생 시절에 처음 추리소설을 읽게 되었던 계기가 아마도 탐정의 초인적인 추리력에 반해서라기보다는 어린이 특유의 잔인함으로 살해 장면 자체에 재미를 느껴서 였을 것이다(초등학생 시절 당시 계림문고에서 어린이용으로 재편집된 셜록 홈즈 시리즈와 괴도 뤼팽 시리즈가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다시 읽어 본 셜록 홈즈 시리즈의 첫 권 『주홍색 연구』(황금가지, 2002)의 경우 표면적으로는 살인 사건과 추리 과정을 다루고 있는 전형적인 범죄소설이지만, 작가인 아서 코넌 도일(Arthur Conan Doyle)의 편향적인 시각도 곳곳에 들어 있다는 점에서 분명 당시의 제국주의 영국을 떠나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인도를 포함한 세계 각지의 식민지에서 들어오는 물적 자원과 값싼 노동력으로 지탱되던 막대한 부(富)가 없었더라면 과연 영국에서 범죄소설이 창안될 수 있었을지, 내가 알기로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극히 가난한 국가에서는 범죄소설이 씌어진 적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도, 범죄소설은 분명히 사회적 맥락에서 경제와 자본, 또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불평등이나 정치적 소외에 따른 불만을 예리한 눈으로 포착한 작가들에 의해 씌어지는 장르라는 점에서 단순히 오락거리라 하기에는 꽤 깊은 울림이 들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이 책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소위 고전 추리소설에 속하는 것들로, 요즘 쏟아져 나오는 작품들에 비해 분명 사회적인 계급성, 그러니까 저자에 따르면 “고전 추리소설의 유명한 주인공들 대부분은 상류계급 출신이라는 것을 지적”(p.58)하고 나서 읽어야 하는 일종의 제약이 있기는 하다.

따라서 “맑스의 용어로 말하자면, 당연히 이런 추리소설들 대부분은 부르주아의 애호물이지, 실제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자본가들의 애호물은 아닌 것이다.”(p.59) 그러므로 고전 추리소설의 대부분에서 살인자들은 당연히 부르주아가 아닌 하류계급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범죄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어쩌면 단순히 인간의 어두운 심성과 살인 자체가 주는 엽기성에 대한 병적 호기심의 해소를 통해 자신이 속해있는 시공간에서 자신의 육체의 안전을 확인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첫 동기가 무엇이든 범죄소설을 읽는 것은 소위 순수문학이 주지 못하는 인간의 극히 어두운 심연에 대한 관심의 표명이며, 그것에 대한 확인을 통해 자신에게도 내재되어 있을 그 심성과 마주 대할 용기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도 또 하나의 정신적 발전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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