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의 冊] 책의 단상③..."책을 마주해서는 하품하거나 기지개를 켜지 말라"
[이수진의 冊] 책의 단상③..."책을 마주해서는 하품하거나 기지개를 켜지 말라"
  • 이수진 교수
  • 승인 2018.09.11 09: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일리즈 이수진 교수]

나는 앞으로도 책에 대한 미련(未練)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이 미련은 과도한 애착이라고 해도 좋을 그런 것인데, 타인들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성질의 것이다.

고래로 선비나 학자들은 책을 아끼고 존경의 관념으로 대해 왔다. 책을 대할 때는 정식으로 예를 갖추고 그 만큼의 존경심으로 마주했다. 제자가 스승을 대하듯, 내가 먼저 예의를 차리지 못하면 예의를 돌려받을 수 없듯이, 그런 마음가짐으로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새기며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 애써 왔던 것이다.

『논어(論語)』를 읽을 때는 공자의 사유과정(思惟過程)을 철저히 따라 갔고, 『맹자(孟子)』를 읽을 때는 자구(字句) 하나, 하나를 새기며 맹자와 대화하듯 귀를 기울였다. 공자와 맹자를 나 홀로 만난다는 벅찬 설렘 속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읽어 나갔던 것이다. 이렇게 책을 읽고 귀하게 여겼으니 책 한 권, 한 권에 대한 의미가 각별했을 수밖에.
 
연암 박지원 선생은 「선비와 독서」라는 산문에서 책을 대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태도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책을 마주해서는 하품하거나 기지개를 켜지 말라. 책을 마주해서는 침을 뱉지 말 것이며, 기침이 나오면 머리를 돌려 책을 피하라. 책장을 넘길 때 침을 바르지 말고 표시를 할 때 손톱으로 하지 말라. 책을 베거나 그릇을 덮지 말며, 책을 난잡하게 늘어놓거나 책으로 먼지를 털지 말 것이다. 책에 좀이 슬면 볕이 들 때 즉시 볕에 쪼여라. 남의 서적을 빌렸는데 글자가 틀렸으면 고거(考據)하여 교정하고, 찌지가 짖어졌으면 기워 주고 책을 묶은 끈이 끊어졌으면 묶어서 되돌려주라."
(출전 : 박 지원 저,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학고재, 서울, 1997, p.p. 112~3)

이 얼마나 고결한 태도인가! 마치 귀인(貴人)을 대하듯 경건한 마음으로 책을 대할 것을 당부하고 있지 않은가!
 
나 역시 마찬가지다. 책을 읽다가 페이지를 접어놓는다든지, ㅅ자 모양으로 엎어 놓는다든지, 잠자리에서 읽다가 아무데나 던져 놓는다든지, 책꽂이에 거꾸로 꽂아 놓는다든지 하는 일은 결코 없다. 또 누군가 책을 함부로 대한다 싶으면 내 눈에서는 불똥이 튄다. 내가 책이라는 사물에 대해 절대적인 개념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나는 저자와 그 내용의 경중에 따라 사뭇 다르게 대접받아야 할 책들이 있다고 굳게 믿는다. 따라서 정평 있는 전적(典籍)들에 침이 묻거나 구겨진 것을 보게 되면 마치 저자가 더럽혀지고 상처를 입은 듯한 모습에 그만 연민과 울분이 솟아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책은 쓴 사람 그 자체이다.

따라서 책꽂이에 『논어』가 꽂혀 있으면 공자라는 인류 공통의 스승 한 분을 내 서재에 모시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며, 책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수만큼의 스승들이 서재에 있는 셈이 되니까 내게는 어느 책이든지 각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단 책 자체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만 단 한 권을 읽더라도 그 내용이 정신과 마음에 깊게 스며들어 진짜 자기의 살과 뼈와 피가 될 수 있으리니.
 
책을 더욱 많이 읽고 싶다. 정신을 바짝 차려 저자와 지적인 대결을 벌여 보고 싶다. 그래야 거대한 사상의 하중에 눌려 질식하지 않을 테니. 한 줄, 한 줄 따라가며 내 생각을 보태 새로운 차원을 개척하고 싶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의 좁은 관심 분야에 맞는 책을 고르고 읽을 것이다.

잘 팔리는 책이란 바로 이런 관심들을 담고 대중의 취향을 만족시켜 준다. 가벼운 감성, 짧은 호흡, 적당한 재미, 요즈음 잘 팔리는 책들이 아마 이러한 것들로 포장되어 있지는 않은지. 물론 어떤 책이든 읽는 것이 아예 읽지 않는 것보단 삶에 자양분이 된다는 점에선 그 나름의 가치는 있고, 또 타인이 많이 읽는 책이 좋은 책일 수도 있지만, 자신만의 투철한 기준을 세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연암 선생의 말로 오늘의 글을 끝내자.

"독서를 하면서 목적을 구하는 것은 모두 제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이다. 평생 독서하되 진보가 없는 사람은 제 욕심 채우려는 사심이 방해한 때문이다."(上揭書, p.110)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명칭 : 데일리즈로그(주)
  • 발행소 : 03425 서울특별시 은평구 서오릉로21길 8, 해원빌딩 301호
  • 대표전화 : 02-385-3118
  • 팩스 : 02-385-3119
  • 제호 : 데일리즈
  • 등록번호 : 서울 아 02435
  • 등록일 : 2013-01-21
  • 발행일 : 2013-01-21
  • 발행인 : 신원재
  • 편집인 : 김경수
  •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정민
  • 편집국장 : 신원재(010-6331-3610)
  • 데일리즈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3 데일리즈.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iesnews@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