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의 冊] 책의 단상②...장서광(狂)에 속한다기 보다 애서가(家)가 되라
[이수진의 冊] 책의 단상②...장서광(狂)에 속한다기 보다 애서가(家)가 되라
  • 이수진 교수
  • 승인 2018.09.11 09: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일리즈 이수진 교수] 

물건이란 사람이 살아가면서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또는 돈과 교환되어진 유형의 자산인데, 이것이 사람 마음을 불편하게 할 때가 있다. 아니, 마음만이 아니라 몸까지 불편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 관련해 이번엔 살면서 얼마큼의 책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한 지에 대한 단상을 써보았다.
 
책의 양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어쩌다 서재를 정리해야 할 때다. 특히 새 책이 다량으로 편입될 경우 양도 양이지만 종류도 많아서 어떤 책꽂이에다 이 책을 꽂고 또 저 책은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길다보니 하루에 정리하는 양이 기껏해야 백여 권 내외라는데 문제가 있다. 이러다가 이 많은 책들을 다 읽는 것은 고사하고라도 그 전에 책에 깔려 숨이나 제대로 쉴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럴 때마다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책에 치이면서도 계속 신간서적을 사려고 하는 나는 과연 욕심이 지나친 것일까? 아니면 책에 대한 욕심은 욕심도 아니라는 항간의 말처럼, 관심분야의 책들을 나오는 대로 사야하는 것일까? 라고...
 
불교의 무소유(無所有)라는 개념은 그래서 늘 부담일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소유한다’는 역설. 옛날에는 개인이 소유할 만큼 무엇 하나 충분하지 못했고, 책은 특히 귀중했기 때문에 정본(定本)이 한 권 있으면 온 동네 선비들이 번갈아 한 권씩 필사본을 만들어서 자기 책으로 만든 연후에야 ‘내 책’이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따라서 한 선비가 소유할 수 있는 책의 수는 극히 한정되어 있었고, 한 쪽 당 담을 수 있는 내용도 적었으며 전체 쪽수도 그만큼 적을 수밖에 없었다. 무게도 대단히 가벼워서 옮기기도 수월했으리라. 무소유라는 개념은 불교에서 나온 것이지만, 옛날 사람들은 누구든지 넉넉지 못한 생활에서 무소유를 터득했으리라.
 
반면 나는 급여의 일정액을 책 사는 것으로 책정해놓고 있다는 점에서는 고질적인 장서광(bibliomania)에 속한다기 보다 애서가(bibliophile)에 더 가깝다. 즉 나는 큰돈에 대해서는 무소유의 개념을 어느 정도 실천할 수가 있지만, 조금의 돈을 투자해서 얻을 수 있는 책의 의미에 대해서는 도저히 초연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정평 있는 전적(典籍)들이 담고 있는 인생의 의미는 큰돈으로 초호화 수입 가구를 사들여 온 집안을 꾸민다고 해서 깨달을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비록 상대적일지는 몰라도, 가구는 초라해도 거기에 꽂혀있는 책이 뿜어내는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책 속에 파묻히는 삶을 택하리라.
 
내게는 서재에서 하루를 천천히 음미하는 것이 가장 좋은 스트레스 해소법이 된지 이미 오래 되었다. 이 책, 저 책의 제목과 저자의 이름을 훑어보면서, 어떤 책은 몇 장을 읽기도 하면서, 예전에 읽었던 책을 꺼내 줄이 그어진 문구를 다시 저작(詛嚼)하면서, 수많은 이름난 저자들과 매일 만나는 지복을 누리는 것이다. 그가 호메로스일 수도 있고, 또는 루쒼(魯迅)일 수도 있다.

나는 오디세우스와는 트로이 전쟁에서의 모험과 방랑에 관해, 아큐(阿Q)와는 근대 중국의 어리석었던 역사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면서 삶과 죽음, 인간과 역사, 부귀와 영락 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는 특권을 누린다.

누가 나와 대화하고자 한다면 부담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이들과는 아무런 사심 없이 언제 어디서나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글이 여기까지 전개되었으니 이제 정리를 해보자.

나도 물건 때문에 몸과 마음이 불편해질 때가 있지만 책만큼은 예외다. 그러므로 나는 앞으로도 책을 계속 살 것이며, 계속 책을 읽고, 글을 쓸 것이다. 내게 무소유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 유일한 물건은 바로 ‘책’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명칭 : 데일리즈로그(주)
  • 발행소 : 03425 서울특별시 은평구 서오릉로21길 8, 해원빌딩 301호
  • 대표전화 : 02-385-3118
  • 팩스 : 02-385-3119
  • 제호 : 데일리즈
  • 등록번호 : 서울 아 02435
  • 등록일 : 2013-01-21
  • 발행일 : 2013-01-21
  • 발행인 : 신원재
  • 편집인 : 김경수
  •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정민
  • 편집국장 : 신원재(010-6331-3610)
  • 데일리즈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3 데일리즈.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iesnews@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