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의 冊] 책의 단상ⓛ...문고본 책이 좋은 다섯가지 이유
[이수진의 冊] 책의 단상ⓛ...문고본 책이 좋은 다섯가지 이유
  • 이수진 교수
  • 승인 2018.09.11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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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즈 이수진 교수]

나는 문고본(文庫本)을 좋아한다. 손바닥만 한 크기에 여백 없이 빽빽하게 활자가 박힌 문고를 한 장, 한 장 읽노라면 큰 책만큼의 무게는 느낄 수 없지만 정보를 쉽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면에서는 그 어떤 판형보다도 더 친밀함을 느낀다.

주머니에 돈은 부족하고 읽고 싶은 책은 판형만 다를 뿐 같은 내용의 책들이 여러 종류가 있을 때, 당신이라면 어떤 판형을 선택하겠는가? 판형이 커야 읽기도 좋고 더 많은 내용과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면 모르되, 나는 당연히 문고본을 택할 것이다.

중ㆍ고교 시절의 애독서였던 삼중당문고나, 대학시절의 애독서였던 범우문고 등 내게는 많은 종류의 문고가 있다. 전파과학사의 현대과학신서, 탐구신서, 문공사문고, 삼성문화문고, 을유문고, 박영문고, 신구문고, 그리고 보통 문고보다 조금 큰 4x6판에 속하는 자유추리문고, 학원사문고, 해문문고, 마당문고, 시공사의 디스커버리 총서 등, 그 종류는 문학에서부터 역사, 과학, 추리, 전기 등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다.

이외에도 문고의 효시라 할 독일의 레클람 문고도 몇 권 있고, 영국의 문고라 할 Penguin books와 미국의 Bantam books, Signet books 등의 페이퍼백 원서는 전공 관계로 상당히 많은 양을 가지고 있다.

또 짧은 실력이지만 그럭저럭 읽어낼 수 있을 정도의 일본 문고본도 많은데 먼저 암파문고(岩波文庫)가 몇 권 있고, 집영사(集英社) 문고, 광문사(光文社) 문고의 밀리터리 일러스트레이티드 시리즈와 Kappa books, 신조문고(新朝文庫), 각천문고(角川文庫), 경문사(經文社)의 백과사전 시리즈, 강담사(講談社)의 현대신서, 문춘문고(文春文庫) 등이 책꽂이에 꽂혀 있어 수시로 꺼내 읽으면서 재미와 정보를 얻고 있다.

문고가 큰 판형의 책보다 좋은 첫 번째 이유. 값이 싸다. 한국의 경우 일반 단행본이 15,000원에서 20,000원 정도의 가격대지만, 문고는 대개의 경우 3,000원(범우문고)을 넘지 않는다. 4x6판의 경우는 5,000원(동서 미스터리 북스)이 넘는 것도 있지만, 4x6판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문고라 할 수 없으므로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값이 싸다는 것은 세계명작이나 고전들을 쉽게 사서 쉽게 읽고 쉽게 버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부담 없이 구입해서 꼼꼼하게 읽고 보관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왜냐하면 한국을 제외한 거의 전 세계의 시민들은 미려한 장정에 고급용지를 사용한 하드커버 본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페이퍼백 표지에 갱지를 사용한 문고본 중에서 문고본을 선택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하드커버 본은 비싼데다가 장식용이라는 개념이 지배적이고, 실제 읽는 책은 값싼 페이퍼백이라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 있기 때문에, 인기 작가들은 반드시 두 가지 판본을 내놓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다. 그리고 비록 판본은 다르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동일하기 때문에(한국의 경우는 원저가 방대할 경우 축약을 하거나 몇 장을 빼먹는 경우가 있어서 같은 내용의 큰 판본을 또 사야하는 불편이 있지만, 일본이나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방대한 저작물들도 몇 권으로 나누어 문고본으로 출판을 하기 때문에 전혀 불편이 없다), 구태여 가지고 다니면서 읽기에 불편한 하드커버 본을 고집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대개의 하드커버 본은 읽히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문고가 큰 판형의 책보다 좋은 두 번째 이유. 가볍다. 판형이 크면 클수록 그만큼 더 무겁기 때문에 휴대하기도 쉽지 않고, 더욱이 현장연구를 해야 하는 경우에는 참고도서의 무게가 짐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문고라는 크기의 한계 상 한 권에 담을 수 있는 내용의 양에도 한정이 있겠지만, 무거운 책 한 권보다 문고본 여러 권이 오히려 덜 무거울 수 있다.

휴가철에 읽고 싶은 책을 여러 권 챙기다가 결국엔 무게 때문에 문고본으로 바꿨던 경험은 누구나 했을 것이다. 대형 백과사전이 아닌 이상 책이 무거워야 할 이유는 없다. 언제 어디서나 꺼내서 읽을 수 있는 상황이 독서의 참맛이므로, 도록(圖錄)이나 화집(畵集)이 아니라면 가벼울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문고가 큰 판형의 책보다 좋은 세 번째 이유. 보관하기가 용이하다. 판형이 큰 책은 책꽂이 한 칸에 많아야 50권 정도를 꽂을 수 있지만, 문고는 100권 정도도 무리 없이 꽂을 수 있다. 과거 우리 출판계의 한 가지 특징이었던 전집류의 경우, 예를 들어 200권짜리 세계문학 전집이라면 커다란 책꽂이 하나를 모두 써도 모자랄 지경이었으나, 삼중당문고라면 세 칸으로도 족하다. 문고는 이사할 때에도 짐이 되지 않는다.

문고가 큰 판형의 책보다 좋은 네 번째 이유. 어디서나 살 수 있다. 한국과는 상황이 다른 일본이나 미국에서는 지하철역, 기차역, 또는 슈퍼마켓이나 약국 등 어디에서나 문고본을 살 수가 있다. 그만큼 시민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책의 개념이 우리와는 다르기 때문이리라. 한국에서는 책을 사려면 의례히 대형서점에 가야 한다는 개념이 우세한데, 책을 살 때 그 분위기도 함께 사는 자본주의의 상업성만 아니라면, 한국도 서점이라는 형태를 벗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

출근하다가 필요한 정보를 담은 문고를 지하철역에서 구입해 읽는다든지 슈퍼마켓에서 생필품을 사고 문고본도 한 권 사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정보를 얻고 빠르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대처럼 바쁘게 변화하는 때에 집 서재에서 정좌하고 책을 읽는다는 것은 좀처럼 가능하지 않은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문고가 큰 판형의 책보다 좋은 다섯 번째 이유이자 최대의 이유. 언제, 어디서나 읽을 수 있다. 독일의 레클람 문고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휴대성에 있었다. 값도 쌌지만, 그 보다도 언제 어디서나 책을 읽을 수 있다는 면이 매력적이었던 것. 지금의 문고도 이런 면에서는 다르지 않다.

보통의 문고는 그림 엽서만 한 크기에 담고 있는 내용은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암파문고나 삼중당문고나 그 크기에서는 동일하다(단 범우문고나 강담사 현대신서는 타블로이드 판이라고 해서 보통 문고보다 위쪽으로 약간 긴데, 직사각꼴이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쪽수도 두꺼워야 거개가 300 페이지 내외로, 읽는 시간으로 따진다면 사흘이면 족하다. 게다가 큰 판형에 비해 한 쪽에 담을 수 있는 활자의 수가 적어서 한 페이지를 읽는 시간도 짧다. 문고는 언제나 읽을 수 있다.

친구를 기다리면서, 공부하다가 무료할 때, 밥을 먹으면서, 대화하다가 막혔을 때, 화장실에서 볼 일 보면서, 군복무 시 보초서면서 틈틈이 아무 때고 읽을 수 있다. 문고는 어디서나 읽을 수 있다. 버스 안에서, 지하철 안에서, 강의실에서, 여행기차 안에서, 출장길 비행기 안에서, 극장 매표소 앞에서, 카페에서, 휴양지에서, 이곳저곳 아무데서나 읽을 수 있다.

간단하게 문고예찬을 했는데, 실제로 나는 늘 문고를 애독해 왔다. 돈이 부족하던 중고교 시절에는 싼 맛에 필독서로 선정된 세계문학들을 부지런히 읽었고, 대학시절에는 현대과학신서나 탐구신서, 또는 박영문고로 대표되는 학술문고들을 주로 읽으면서 여러 학문들과 친숙해질 수 있었으며, 지금은 일본 광문사의 밀리터리 일러스트레이티드 시리즈나 시공사의 디스커버리 총서처럼, 주로 전문분야의 문고들을 읽으면서 관심분야를 계속 넓혀나가고 있다.

거의 20여년 전 일본에 출장차 갔을 때는 서점마다 가득한 문고본을 보고 과연 일본은 문고의 나라구나 하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었는데, 한국도 인식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문고본이 마진율이 적다는 이유로 서점주가 들여놓기를 거부하고 출판사도 같은 내용의 큰 판형보다 값이 싼 문고본이 돈을 벌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출판을 꺼리고 있는데, 먼저 서점이 변해야 하고 다음엔 출판사, 마지막으로 독자가 변해야 한다.

아니, 독자가 변하는 것이 제일 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대다수의 독자들은 책이란 커야 되고, 종이도 좋아야 되며 값도 비싸야 그만큼 책 읽는 맛이 난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 생각은 다르다. 두고두고 볼 책이 있고, 읽고 나서 버려도 되는 책이 있듯, 판형에도 만약 전공서적처럼 오래도록 보아야 할 책이라면 하드커버가 좋고, 소설이나 역사서라면 페이퍼백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일본의 문고는 동서고금의 문학은 물론이고 과학, 역사, 철학, 군사 등의 제 학문들 모두를 담아내고 있고, 그 외에도 화가의 화집이나, 사진가의 사진작품집, 만화가의 만화전집, 여행안내서, 유적 발굴기 등의 비주얼한 문고처럼 응용분야의 출판에도 열심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문고라 하면 문학이 가장 보편적인데, 실제 가장 많이 팔렸고 한국 문고의 모범이라 할 삼중당문고 시리즈 400여권의 2/3 이상이 문학이다.

게다가 지금 나오는 문고들도 문학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채 과거의 판형을 되살려 출판사 이름만 바꿔 다시 찍는 것이 많다. 일본의 문고는 표지나 장정, 또 활자나 전체 레이아웃 등도 미려한데 비해서, 한국의 문고는 그야말로 싼 맛에 사는 책이라는 인식이 강해서인지 책다운 맛은 거의 없고 작은 크기에 활자만 박아 놓은 초라한 종이뭉치의 모습들이다.

일본인들이 축소지향이라서가 아니라 책에 대한 인식 자체가 우리와는 다른 것이다. 먹기 좋고 보기 좋게 조리된 요리처럼, 일본의 문고들은 큰 책이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현대인의 허기를 싼 값과 작은 크기, 가벼운 무게에다 빠른 정보를 간략하게 실어 당의정처럼 쏙쏙 넘어가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책 구입만큼은 나름대로 정해놓은 철칙이 있는 나는 전공서적이나 기타 학술서적들은 큰 판형을 사고, 문학이나 기타 잡다한 분야들은 모두 문고본을 산다. 다행이도 최근엔 문학과 지성사의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시공사의 디스커버리 총서처럼 알차고 시각적으로도 풍부한 자료를 담고 있는 문고 아닌 문고들이 나오고 있어 모처럼 문고출판이 활기를 띄고 있는데, 또 다시 외면을 당하는 일 없이 장수하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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