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의 冊] 스마트폰ㆍ줄줄이 학원과 비교되는 어린 시절 '책 읽기'
[이수진의 冊] 스마트폰ㆍ줄줄이 학원과 비교되는 어린 시절 '책 읽기'
  • 이수진 교수
  • 승인 2018.08.22 1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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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즈 이수진 교수]

잠깐 외출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재잘거리며 깔깔대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던 어린이들을 보았다. 모두 초등학생 같은 학년으로 보이던데, 스마트폰에 빠지지 않고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하다 웃고 어떤 하나의 주제 아래 토론도 하는 것을 보고 듣고 있자니, 새삼 나의 어린 시절은 어땠던가 하고 잠시 상념에 빠져들었다.

지금과 비하면 어린 아이가 즐길 수 있는 매체가 부족했던 시절, 오직 동네 친구들끼리 모여 작은 공으로 축구를 하거나 어설프게 규칙을 지키며 글러브도 없이 야구를 하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냈었지.

가끔은 동네 후미진 골목에 있던 만화방에서 100원만 내면 마음대로 만화책을 읽을 수도 있었는데. 요즘처럼 컴퓨터나 인터넷, 스마트폰 또는 게임 따위는 생각도 못했던 그 시절, 놀이라고 해야 오직 몸을 움직이는 구기(球技)이거나 아니면 극히 창의성을 발휘한다고 해도 나무로 대충 깎아 만든 총(모양의 물건)을 들고 뛰어다니면서 입으로 하는 총 싸움이 고작이었는데.

그래도 즐거움만큼은 지금의 그 어떤 놀이에 비해 뒤지지 않았다.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한 바탕 뛰어 놀고 집에 들어오면 맛있게 쪄진 감자에선 김이 모락모락. 설탕과 함께 으깨어 한 입 먹으면 그 맛이라니!

당시에 내가 장래에 대해 어떤 꿈을 꾸었고 무슨 희망을 가지고 소중했던 그 시절을 보냈는지 전혀 기억할 수 없지만, 장마 시기면 천장에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던 인왕산 아래 일자(一字) 집 나만의 골방 앉은뱅이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작은 책꽂이에 몇 권의 책들이 꽂혀 있었던 것만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지금도 건재한 동서문화사의 동서 딱따구리 북스 몇 권(『수호지』와 『모히칸족의 최후』등의 어린이용 축약본)과 계림문고 몇 권(『파브르 곤충기』와 『셜록 홈즈의 모험』등의 어린이용 축약본), 그리고 출판사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조악한 표지 디자인의 『황금 풍뎅이』를 포함하는 공포·미스터리 소설들과 새소년 클로버문고 몇 권 등, 많지 않은 용돈을 아껴 한 권씩 사서 읽었던 그 책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당시 계림문고에서는 셜록 홈스와 아르센 뤼팽 시리즈를 50권인가 냈었는데, 그 중에서 불과 서너 권만 살 수 있었고 끝내 모두 구할 수가 없었던 안타까운 마음이 지금도 가슴 시리게 느껴진다(특히 코넌 도일이 쓴 「얼굴 없는 사나이」라는 제목 아래 붕대로 얼굴을 칭칭 감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담은 표지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마 <셜록 홈스 전집 완역본>을 40대 초반에, <아르센 뤼팽 전집 완역본>을 40대 중후반에 모두 구한 것은 당시의 안타까움이 작용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많은 책을 읽고 싶어 했고 그만큼의 책을 갖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꿈이 지금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수많은 책들로 아파트 여기저기가 과도한 무게를 견디고 있는 괴로운 상황이 되어 버렸다.

나는 꿈을 이룬 것일까?

그렇게 많은 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꾸 책을 찾아 중고서점이나 인터넷 서점을 기웃거리는 것이 과연 정상일까? 죽기 전까지 다 읽을 수나 있을까? 질과 양적인 측면에서 어린 시절의 책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는 데 몇 백배나 초과한 수천 권에 이르는 책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요즘 어린이들은 어떤 목적으로 책을 읽고 있는지, 읽고 난 뒤에는 얼마나 생각이나 행동에 변화가 일어나는지 궁금해진다.

내 어린 시절에 비해 엄청나게 좋아진 출판환경 덕분에 정말 다양하고 유익한 책들이 눈만 뜨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지금, 정작 어린이들은 행복할까? 독서마저도 논술 시험이나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가시적 목적에 동원되고,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 대학에 들어가서는 인문교양서 한 권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믿지 못할 현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쩌면 요즘 어린이들은 넘쳐나는 조각 정보에 익숙한 만큼의 자신의 머리로 깊이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은 내 어린 시절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것은 아닐까?

웃고 떠들던 그 녀석들이 꿈과 희망을 이루는데 필요한 것은 정작 자발적인 지적 호기심이 아닐까 생각하며 버스에서 하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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