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미륵사지 서쪽 석탑'...본모습 되찾았지만 서동설화는 바로잡다
국보 '미륵사지 서쪽 석탑'...본모습 되찾았지만 서동설화는 바로잡다
  • 신상인 기자
  • 승인 2018.06.21 1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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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공주의 서동요 설화 기록한 '삼국유사'와 사택 좌평 딸이라는 사리 금판과 대조

[데일리즈 신상인 기자]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석탑 '미륵사지 석탑'이 대수술을 받고 본모습으로 귀환했다. 1915년 일본이 석탑을 수리한다며 콘크리트로 덧씌운 만행 후 103년만이다.

지난 1998년 구조안전진단은 콘크리트의 노후화 및 구조적 불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예상된다며 석탑의 해체 수리를 결정한 후 20년만이기도 하다.

미륵사지 석탑은 현존하는 최대 규모의 석탑으로, 백제 목조건축의 기법이 반영된 독특한 양식을 자랑한다. 작업을 마친 미륵사지 서쪽 석탑의 임시 개방은 오는 7월까지이다.

20일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백제 때 지어진 전북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에 있는 미륵사 서쪽 석탑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콘크리트로 덧씌운 부분을 걷어내고 구조적 문제를 보강하기 위한 석탑 해체와 수리 작업이 모두 끝났다고 밝혔다.

미륵사지 석탑은 조선시대 이후 반파된 채로 있다가 지난 1910년 벼락을 맞아 서쪽 부분이 무너지고 6층 밖에 남지 않았다. 1915년 일본에 의해 콘크리트로 덧씌워졌다가 1999년 안전성 문제로 해체가 결정돼 2001년부터 해체와 보수작업을 시작했다..

이번에 문화재청은 미륵사지 석탑이 처음 만들어진 후 1300년이 흐르면서 노후된 상태에서 일제시대 조선총독부가 덧씌운 아스팔트로 인해 흉물스럽던 옛 탑을 역사성이 해치지 않기 위해 6층까지만 수리했다.

왼쪽부터 조선총독부 복원전 석탑(일제는 탑의 크기를 기준하기 위해 조선인을 옆에 세우고 문화재 사진을 찍는다), 일본인들이 콘크리트로 덧칠한 석탑, 6층까지 복원을 마친 미륵사지 서쪽 석탑 ⓒ인터넷 커뮤니티
왼쪽부터 조선총독부 복원전 석탑(일제는 탑의 크기를 기준하기 위해 조선인을 옆에 세우고 문화재 사진을 찍는다), 일본인들이 콘크리트로 덧칠한 석탑, 6층까지 복원을 마친 미륵사지 서쪽 석탑 ⓒ인터넷 커뮤니티

석탑은 원래 7층~9층으로 추정되는데, 추정을 바탕으로 높이를 더 올리면 본연의 의미를 해칠 수 있고 무리한 복원이라는 결론 때문이었다.

특히 1992년 과거 미륵사지 동쪽 석탑을 보수할 때 9층에 맞게 마구잡이로 보수했다는 비판을 샀으며 20년째 졸속 보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에 문화재청이 서쪽 석탑을 복원하면서 동쪽 석탑처럼 졸속 복원이라는 논란을 피하려 20년간 심혈을 기울었으며, 그래서 문화재 복원의 새 역사를 썼다는 평가도 받는다.

석탑 보수 작업팀은 해체되는 부재들을 모두 3D 스캐닝을 해 형상정보를 기록했다. 고증을 위한 발굴조사, 원래 부재와 새 부재에 대한 연구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일본이 덧씌운 아스팔트는 치석 제거 기구로 세밀하게 벗겨냈다. 제거된 아스팔트 분량은 무려 185톤 분량이었다.

이 과정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면서 석탑이 백제 무왕(武王) 때인 639년 왕후의 발원으로 건립됐다는 사실도 추가적으로 밝혀졌다.

석탑 해체 중 1층 내부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는 한 변 25㎝, 깊이 26.5㎝에 이르는 방형 사리공에서 금동사리호, 금제사리봉영기, 은제관식 등 9947점에 이르는 유물이 대거 수습됐다. 

사리 봉안 기록판에는 시주자의 신분이 무왕의 왕후이자 좌평(백제의 최고 관직)인 사택적덕의 딸이라는 사실이 새겨져 있다.

2013년 재조립에 들어간 미륵사지 석탑은 옛 부재 중 81%를 사용하면서 원재료에 충실했다. 새 부재도 옛 부재와 재료학적으로 가장 비슷한 미륵사지 인근 채석장에서 구했고, 조립 기법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구조적 안정성이 확보됐다.

작업팀이 안정적이고 고증이 가능한 6층까지 보수를 마무리한 석탑은 높이 14.5m, 너비 12.5m에 무게는 1,830톤이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 연구소 측은 "20년에 이르는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사업이 마무리 단계다. 석탑 수리는 완료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외부 가설구조물 철거와 주변 정비가 끝나는 12월이면 미륵사지 석탑의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미륵사지가 위치한 전북 익산시 금마면 용화산(龍華山)은 마한(馬韓)의 옛 도읍지로 추정되기도 한다. 한국 최대의 사찰지이기도 한 미륵사는 601년(백제 무왕 2) 창건됐다고 전해지며, 무왕과 선화공주(善花公主)의 설화로 유명한 사찰이다.

하지만 사리봉안 기록 금판 내용이 무왕의 왕후가 백제 좌평 사택적덕의 딸로 드러나면서 서동왕자(무왕)가 향가 '서동요'를 신라에 퍼뜨려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와 결혼했으며, 그 뒤 선화공주가 미륵사를 건립했다는 <삼국유사>의 내용과는 다른 것이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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