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인의 조건] 교양이란 무엇인가①…문학작품을 다독(多讀)하는 것이 첫번째 길
[교양인의 조건] 교양이란 무엇인가①…문학작품을 다독(多讀)하는 것이 첫번째 길
  • 이수진 교수
  • 승인 2018.05.16 10:16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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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즈 이수진 교수]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실제로 오늘날 일반적인 교양에 반드시 필요하다. 완전한 교양을 갖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요구된다. 즉, 비교적 긴 생애를 보낸 사람은 우수한 문학작품은 남김없이 읽어야 하며, 그 밖에도 지식의 모든 분야에 대해 조금이나마 일반적인 올바른 개념을 익히고, ‘인간에 관한 것이라면 거의 모르는 것이 없다’라고 말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 (『행복론』, 칼 힐티, p.720~1)

위 인용문은 스위스 출신의 학자이자 법률가, 정치가이자 역사가인 칼 힐티(Carl Hilty, 1833~1909)가 그의 저서 『행복론』(Glück)에서 한 말이다. 한 평생을 고결하고 신실하게 살았던 사람답게 그 자신 교양인이었듯 그 구비 조건으로 독서와 학문 연구에 힘쓸 것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다 나는 세 개의 질문을 덧붙이고자 한다. 먼저 교양이란 무엇이고, 두 번째로 교양인은 어떤 범주에 해당하는 사람인지가 그것이다. 세 번째는 교양을 독서와 학문 연구라는 방법론을 통해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조건으로 일반화 하는 것은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위 질문들에 답하기 전 힐티의 의견을 자세히 고찰해보기로 하자.  

힐티는 교양인의 조건으로 세 가지를 말했는데, 첫 번째는 “우수한 문학작품은 남김없이 읽어야”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소위 우수한 문학작품이란, 힐티의 출신국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듯 서구 유럽의 그것들을 의미한다고 보아도 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유럽은 많은 국가들이 국경선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그 동안 공유해온 문화적 자산들은 국경선을 뛰어 넘어 공통의 유산으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다. 따라서 힐티가 말하는 우수한 문학작품들도 기본적으로는 고대 그리스부터 기독교 시대를 거쳐 르네상스와 근대 및 현대에 이르는 오랜 세월 동안 형성되어온 방대한 양과 질의 유럽 각국 문학사에서 언급되는 작품들일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도 하버드나 시카고 대학 등지에서 행해지고 있는 명저 읽기 프로그램 등과 유사한 일종의 교양 교육에서 반드시 제시되는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나 『국가』를 포함하는 일련의 저작들(플라톤의 저작들은 수준 높은 문학작품으로 분류해도 무리가 없다)부터 고대 비극들, 중세 프랑스의 몽테뉴가 쓴 『수상록』이나 기독교 관련 저서들, 근대 이후 특히 영국에서 발달한 소설과 현대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에 이르는, 그야말로 대단히 팽대한 세계문학사의 걸작들 모두를 포함하는 목록 말이다.

여기에다 힐티가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덧붙일 목록이 있다면, 만약 당신이 아시아인이고 아시아의 대부분이 고대부터 중국의 영향력 하에 있었다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면, 『논어(論語)』를 포함하는 중국의 경전은 물론 송(宋)이나 당(唐)의 한시(漢詩), 부(賦), 표(表), 연의(演義) 등에 이르는 또 하나의 거대한 목록을 추가해야 할 것이다. 이외에도 자신이 태어난 나라는 그 곳이 어디이던 상관없이 유구한 역사에 걸 맞는 문학전통이 존재해 왔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한국 땅에 태어난 한국인이므로 당연히 한국문학사에서 언급되는 수많은 문학작품들도 포함시켜야 비로소 힐티가 말하는 우수한 문학작품 리스트가 완비되는 것이다. 이 방대한 세계문학 중에서 몇 작품을 읽어야 힐티가 말하는 교양인의 첫 번째 조건에 부합할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관심 정도에 따라 큰 폭으로 나누어질 것은 자명하다.  

나의 경우를 보면, 우선 전공이 영어영문학인 관계로 영미문학에 관한 한 꽤 읽었다고 자부하지만, 대부분 수업의 일환으로 접했거나 아니면 영어공부에 도움을 얻고자 하는 학습의 한 방편으로 읽었던 작품들이 많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순수하게 문학작품이 가지고 있는 즐거움을 온전히 흡수하거나 또는 작품 읽기를 통해 감성의 예민함을 더욱 분화시켜 내 공감 능력을 키운다든지, 아니면 현실 세계를 해석하는 비판적 시각을 키우고자 하는 읽기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나는 영미문학에 국한하여 생각해 볼 때 문학 본연의 즐거움은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시나 소설을 다 읽지도 못하고 시험을 보아야 했고, 나만의 해석이 아니라 권위 있는 비평가의 의견을 짜깁기하여 논문을 작성하는 등의 과정을 통해 읽는 재미 자체를 잃었다고 할까. 게다가 주요 작가들의 전 작품이 아니라 한 두 편씩만 읽었던 것이므로 전체적인 작품세계를 파악한다는 것 또한 거의 불가능했다.

어쩌면 영미문학사 한 권을 통독하고 거기에 소개된 작품들의 제목 정도만 기억한 뒤 다 읽었다고 자위 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고등학생 시절에 한국어 번역으로 E. A. Poe의 『포우 단편선』이나, H. Melville의 『백경(白鯨)』, C. Lamb의 『엘리아 수필집』 따위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특히 『백경』은 내가 대학의 학과를 선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미국 문학사상 최고최대의 걸작이기도 하다. 아무튼 한 나라의 문학도 제대로 소화시키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세계문학 전반에 관해서는 말해 무엇 하랴!

이와 관련하여 나의 문학작품 읽기에서 특기할 만 한 사실은 대학시절 몇 몇 작가들은 그래도 꽤 집중해서 읽었다는 점이다. 그 중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1821~81)는 데뷔작인 『가난한 사람들』부터 『백야(白夜)』를 포함하는 몇 개의 단편들, 『죽음의 집의 기록』,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및 『유럽 인상기』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한 전 작품을 샅샅이 읽느라 밤을 새우곤 하던 기억이 새롭다.

또 한 작가는 프랑스의 로맹 롤랑(Roman Rolland, 1866~1944)이다. 우연히 들렸던 중고서점에서 상, 하권(중권은 없었다)만을 구해놓고 읽지 못하고 있던 『장 크리스토프』를, 그 뒤 서울역 헌책방에서 대형본 두 권으로 합본된 것으로 다시 구해 그야말로 식음을 전폐하고 거의 석 달 정도를 새벽 3시까지 매일 읽었다. 주인공 장 크리스토프는 베토벤을 모델로 한 격정적 성격의 작곡가이다. 로맹 롤랑은 베토벤에 경도되어 그 생애를 연구하였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베토벤의 생애』이다. 이 책도 『장 크리스토프』를 다 읽고 난 뒤 바로 구해 읽었음은 물론이다. 내가 지금도 베토벤의 음악을 외경심으로 대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위 두 작품의 영향임이 분명하다. 베토벤의 전 작품을 듣고자 노력하는 것도, 베토벤의 초상화를 보며 예술가의 내면을 닮고자 애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 번째로 집중해서 읽었던 작가는 현대 그리스의 거장인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 1885~1957)다. 나는 대학과 대학원 시절 용돈을 아껴 당시 고려원에서 나와 있던 그의 전집 14권을 몇 달에 걸쳐 한 권씩 모두 구했던 기쁨의 감정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실제로 읽었던 작품은 『그리스인 조르바』와 『영혼의 자서전(自敍傳)』, 편지글 모음인 두 권짜리 『인간 카잔차키스』, 호머의 『오디세이』가 끝나는 부분에서 써내려간 33,333행의 방대한 서사시『오디세이아』첫 권 등 모두 다섯 권에 불과하지만, 그의 작품 모두는 내 나머지 삶의 빛으로 끝까지 함께 할 것이다.

카잔차키스를 알게 되어 그의 작품을 읽으며 보냈던 내 젊은 날의 가슴 벅찼던 체험은, 중년을 훨씬 넘긴 지금까지도 그의 삶을 닮고자 하는 나날의 몸부림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적어도 내가 세상을 떠날 때는, 그의 두 번째 부인인 엘레니 카잔차키스가 『인간 카잔차키스』제 2권의 마지막 부분에서 카잔차키스의 죽음을 두고 표현했듯, “향연에 참석하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문턱을 넘어서는 왕처럼”, 나도 그렇게 떠나고 싶다. 최근 <열린책들>에서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이 새롭게 나왔는데, 고려원판으로는 기획이나 번역 과정에서 나오지 않았던 작품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고 판형도 작아 눈으로 보기에도 무척 아름다울뿐더러 사철 방식으로 제본되어 있어 튼튼하기까지 하다. 젊은이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마지막 작가는 바로 헤르만 헤세(Herman Hesse, 1877~1962)다. 아는 사람은 잘 알겠지만 헤르만 헤세는 고독이나 방랑 따위의 이른바 낭만적인 감수성에 어필하는 내용과 문체로 꽤 친숙한 작가일 것이다. 나 역시 고등학생시절부터 지금까지 『페터 카멘친트』나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싯다르타』, 『황야의 이리』등의 소설들과 『나비』, 『정원일의 즐거움』등의 산문집에 이르기까지, 꽤 많은 작품들을 읽었다.

그러면서 아득한 그리움에 빠져들거나 까닭 모를 슬픔도 느끼곤 했었지. 특히 기계문명과 전자화가 극에 달해 오히려 인간성은 황폐해지고 있는 현대에 헤르만 헤세의 글이 아직도 유효한가라고 질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자연과의 합일 또는 문명 이전의 시간에 대한 원초적인 향수, 제도화되고 폭력적인 인간 사회의 갖가지 억압들에 대한 저항으로써의 낭만적인 감수성 내지 정신적 극복으로써 문학이 갖는 치유의 힘이 여전히 헤르만 헤세의 글 속에는 넘쳐 난다’ 라고 대답하겠다.

이렇게 집중해서 읽었던 네 작가들에 대해 써보았는데, 물론 그 과정에서 미구엘 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나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등,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도 상당히 많이 읽었고, 그 기억들은 지금도 내가 세상사에 흔들리고 인간에게 상처를 입을 때마다 나를 지탱해주는 기둥이 되고 있다. 

필자 : 이수진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문학ㆍ문화학과 외래교수
                  - 르네상스ㆍ셰익스피어 / 근현대 영미희곡 전공(영문학 박사)

 

[교양인의 조건] 글 순서

[교양인의 조건] 교양이란 무엇인가①…문학작품을 다독(多讀)하라

[교양인의 조건] 교양이란 무엇인가②…어떤 문학작품을 읽을 것인가

[교양인의 조건] 교양이란 무엇인가③… 노벨문학상 보다 훌륭한(?) 작품을 찾아보자

[교양인의 조건] 교양이란 무엇인가④…독서로 인간(人間)을 돌아보자

[교양인의 조건] 교양이란 무엇인가⑤…다방면의 다독도 좋은 방법이다

[교양인의 조건] 교양이란 무엇인가⑥…문제해결 1 : 자신을 포장하기보다 세상의 흐름을 파악하라

[교양인의 조건] 교양이란 무엇인가⑦…문제해결 2 : 지식 만능자와 다른 도덕적 존재가 되라

[교양인의 조건] 교양이란 무엇인가⑧…문제해결 3 : 지식인을 넘어 교양인이 되는 길은 이미 일반화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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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태 2018-05-27 18:17:01
깊은 내공과 통찰력이 돋보이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파트별 단일 주제라도 좀 더 넖은 지면에서 쓰여지면 좋을듯 하다는 어쉬움이 들었습니다. 압축되고 제된 표현이 깊은 생각으로 이끌고 울림을 주네요
좀 더 다양한 분야의 글도 기대하며 읽어 보겠습니다

김유경 2018-05-17 07:45:27
와~~교수님 글을 읽으니 문학작품을 더 심취하고 실어져요
인문고전의 리딩이 최고죠!!!

윤영희 2018-05-17 00:00:22
저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위대한 성자 프란체스코를 읽으며
카잔차키스의 눈물과 숨결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진솔하게 쓰신 글을 접할 수 있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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