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香齋 풍경과 일상] 책 읽는 법⑦…독서의 당위성은 책 속에 지성소(至聖所)가 있기 때문이다
[淸香齋 풍경과 일상] 책 읽는 법⑦…독서의 당위성은 책 속에 지성소(至聖所)가 있기 때문이다
  • 이수진 교수
  • 승인 2018.05.08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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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즈 이수진 교수] ‘데일리즈’는 이수진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문학ㆍ문화학과 외래교수의 다양한 식견(識見)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淸香齋 풍경과 일상]을 연재한다. 독서와 음악, 애니메이션, 밀리터리, 역사 등에 대한 이수진 교수의 다양한 이야기와 독후감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최근 들어 흉포하고 파렴치한 사건과 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터지기 시작한 여혐과 폭로적인 미투(#me too)등 사회병리학적 현상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를 지적으로 이해하고 해결책을 도출하려면 우선 자신을 포함하는 인간이라는 종(種)에 대한 깊은 고찰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반문은 지난 번에 이미 던졌다.

이와 관련해 특히 재일 사학자 강덕상 선생의 <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조금은 더 깊어지고, 누구든지 자신 속 어둠을 똑바로 응시하고 거기에 맞설 수 있는 마음의 기준도 세울 수 있으리라 본다.

소위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은 인간성의 어둠과 잔혹성, 그리고 일본이라는 제국주의 국가권력의 포학성과 조선인에 대한 멸시감정으로 가득 차있던 일본 민중의 어리석음 등이 혼합되어 일어난 비극이었다.

강도 7.9에 이르는 대격진(大激震) 후에 대형 화재와 뒤이어진 해일로 인해 국가 기능이 거의 마비된 시점에서 조선인이 방화를 했다거나 우물에 독을 탔다는 따위의 유언비어가 퍼져나갔고(저자에 따르면 이 유언비어는 민심을 수습하려는 목적으로 일본의 권력 중추에 있던 관료들과 경찰 권력에 의해 조작되었음이 확실하다. 마치 나치와 히틀러가 유대인과 공산주의자에게 1차 세계대전 패전의 원인을 뒤집어 씌어 박해했듯이, 인간은 내부의 잘못을 외부에서 억지로 찾아 자아의 만족을 꽤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이에 따라 일본의 관헌과 흥분한 민간인들에 의해 희생양 격으로 잔혹하게 학살당한 재일조선인이 자그마치 6,000명이 넘었다. 나는 그들의 명복을 빌며 마음속으로 수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비단 관동대지진시의 조선인 학살이 아니더라도 세계사는 수도 없이 많은 학살들로 점철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인간성을 경계하고 어두운 면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구해야 할 차례다. 역시 바로 고전 속에 차고 넘칠 정도의 지혜가 들어 있다. 고전은 오랜 세월을 거쳐 그 가치가 확인된 인류 지성의 원천이자,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질과 속성에 대한 해답을 두루 담고 있는 지성소(至聖所)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자가 <논어>의 ‘안연(顔淵)’에서 “顔淵問仁. 子曰 ; 克己復禮爲人.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人由己. 而由人乎哉? 顔淵曰; 請問其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顔淵曰; 回雖不敏. 請事斯語唉(안연이 어짊에 대해 묻자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을 이겨내고 예를 되찾는 것이 어짊을 도모하는 것이다. 어느 하루 자신을 이겨내고 예를 되찾는다면 천하가 어짊에 돌아올 것이다. 어짊을 도모하는 것이 자기에게서 비롯되지 남에게서 비롯되겠느냐? 안연이 말했다. 세목을 묻고자 합니다.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아라. 안연이 말했다. 제가 비록 불민하나 그 말씀을 잘 받들겠습니다.)” <새 번역 논어 (p.312)>

이렇게 말한 것은, 자기 극복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또 예(禮)라는 것이 인간의 기본 심성이 되어야 함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을 예로 대한다면 어찌 인간을 함부로 다룰 수 있겠는가? 같은 인간이라는 것만으로 깊이 존중되고 이해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찌 같은 종으로써의 인간을 인종, 성별, 노소 등으로 구별 짓고, 패거리를 이루며, 주인과 노예 또는 지배와 피지배 따위로 나와 너의 다름을 합리화할 수 있단 말인가? 무엇을 근거로 내가 너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는가? 과연 무엇이 인간다운 것이고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인가?

이상 간단하게 써본 독서의 당위성에 관한 극히 사적인 글이었다. 육체의 노쇠함을 한탄하지 말고 정신의 젊음을 유지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글이 여기까지 이르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한 가지 좋은 점은 내려놓아야 할 때 내려놓고 물러서야 할 때 물러 설 수 있는 정신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젊을 때는 어떤 대상과도 맞설 수 있었지만, 그 맞섬에서 마음에 상처받고 패배를 겪고 보니 삶이란 허망한 것이고 하물며 죽음이란 더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자, 스마트 폰을 내려놓고 책을 집어 들자.

책은 스마트 폰이 절대 줄 수 없고 줄 리도 없는 사고의 깊이와 투철한 세계관, 그리고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해준다. 단, 정평 있는 고전이거나 어떤 특정 주제에서 인정받는 책일 경우에만 가능하다.

필자 : 이수진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문학ㆍ문화학과 외래교수
                  - 르네상스ㆍ셰익스피어 / 근현대 영미희곡 전공(영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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